‘통상임금 신의칙’ 구체적 기준 제시… 근로자 손 들어줘
“경영 악화 예견·극복 가능성 있으면 신의칙 위반 아냐”
통상임금지급 책임 1·2심은 엇갈려…2심은 사측 승소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9년간 이어지며 1·2심이 엇갈린 판결을 내놓았던 7000억원대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실상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경영상태 악화 예견과 극복이 가능한 경우엔 임금 소급을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인 정모 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대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사측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심은 현대중공업의 경영악화만이 아니라, 기업의 계속성이나 수익성, 경영상 어려움을 예견하거나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고려해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신의칙 위반’ 여부를 따질 때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정씨 등 10명은 2012년 회사를 상대로 “상여금 800%가 통상임금에 해당하고 이에 따라 소급 임금으로 지급하라”는 대표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7500억원에 달하는 통상임금 규모 외에도, 그동안 기준이 애매했던 ‘신의칙’을 구체화할 소송으로 주목받았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통상임금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본봉 외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도 모든 근로자에게 같은 금액을 고정적으로 지급했다면 명칭을 불문하고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통상임금 규모가 커지면 근로자들의 연장근로수당과 퇴직금 액수도 그만큼 올라간다. 기업들은 통상임금 소급분을 한꺼번에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대법원은 ‘지나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 청구는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근로자들도 임금 협상을 한 이상 소급 임금을 무조건 요구할 순 없다는 것이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신의칙을 적용해 임금 청구를 제한할 수 있는지 기준이 명확지 않아 후속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경영상 어려움’이란 기준이 단순히 영업이익과 통상임금 지급액 차액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신의칙 적용 여부에 대한 1·2심 판단도 엇갈렸다. 2015년 2월 1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회사 경영 사정이 악화됐지만 이를 이유로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상여금 800%(명절상여금 100% 포함)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반면 항소심은 명절상여금 100%를 제외한 700%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보면서도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 발생하는 임금 소급분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 냈다. 항소심은 현대중공업의 2015년 2분기 동안 영업손실이 1분기 대비 약 1.4배, 당기순손실은 약 3.5배로 적자 폭이 많이 증가했다고 봤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현대중공업이 약 6300억원을 추가로 부담할 경우, 재무적 위기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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