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루이비통 남성 전문매장. [현대백화점 제공]

[헤럴드경제=오연주 기자] “국내 브랜드 더는 경쟁력 없습니다. 모두 내보내세요.”

최근 배우 송혜교가 출연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한 백화점 임원의 대사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곳은 국내 인기 프리미엄 패션브랜드지만 백화점에서 해외 브랜드를 대거 채우기로 하면서 퇴출 통보를 받았다. 명품 비중이 절대적으로 올라가면서 국내 브랜드가 밀려나는 상황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도 똑같이, 더욱 가속화되는 중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의 명품 브랜드 강화 등 고급화 전략에 따른 점포 리뉴얼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브랜드 면적이 축소되거나 층별 이동이 잦아지고 있다. 전통 명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MZ(밀레니얼+Z)세대에 인기 있는 신명품 브랜드 매장이 늘어나고, 해외 컨템포러리 브랜드 구역도 늘어나면서 밀려나는 것은 결국 국내 브랜드다.

백화점의 이 같은 전략은 명품 매장의 매출 견인 효과가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1조 클럽’ 백화점은 총 10곳으로, 지난해 5곳보다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 여행이 제한되고, 보복 소비 열풍이 불면서 백화점 인기 명품 매장에는 오픈런이 일상화됐고, 상위권 백화점일수록 이런 현상은 두드러졌다.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 해외 패션관 이미지.[롯데백화점 제공]

백화점의 ‘명품 사랑’은 더욱 거세지는 중으로, 지난해부터 리뉴얼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롯데백화점 명동본점만 해도 명품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올해 7월 5층 전체를 남성 해외패션 전문관으로 리뉴얼해 톰포드, 발렌티노, 루이비통멘즈 등 30여개 브랜드로 구성했다. 면적은 기존 2315㎡(약 700평)에서 4960㎡(약 1500평) 규모로, 배 이상 확대했다. 내년 4월께 그랜드오픈하는 여성패션관 중 이달 1일 새 단장을 마친 3층은 여성컨템포러리 매장으로, 각종 해외 컨템포러리 브랜드와 해외패션 편집숍 ‘엘리든 플레이’까지 채우면서 현재 국내 브랜드는 찾아볼 수 없다. 지하 1층에 있던 국내 핸드백 매장도 이번 개편에서 9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8일 1985년 개점 이후 36년 만에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은 지난해부터 4층을 ‘멘즈 럭셔리 관’으로 바꾸면서 구찌멘즈, 발렌시아가멘즈를 입점시켰고 올해 6월 루이비통 남성전문매장까지 입점시켰다. 이 과정에서 빈폴, 헤지스 등의 국내 브랜드는 일찌감치 기존 공간을 비웠다. 15일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압구정동 갤러리아명품관 역시 여성복 가운데 국내 브랜드는 편집숍을 제외하고 단독 매장으로는 더캐시미어가 유일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아웃도어 퇴출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잘나가던 패션 브랜드가 핵심 층에서 밀려나거나 아예 사라지는 일들이 늘었다”며 “온라인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백화점에 와야 살 수 있는 브랜드들로 채우는 것이 경쟁력으로 명품 팝업 매장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것이 최근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백화점의 럭셔리 강화 전략은 최근 인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외부 출신으로 롯데백화점의 첫 수장이 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아르마니, 몽클레르, 돌체앤가바나, 메종마르지엘라 등 40개 가까운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유치한 경력이 있다. 또 손영식 신세계 대표는 백화점에서 해외명품팀장과 상품본부장, 패션본부장 등을 거쳤으며 특히 신세계디에프 대표 재직 시절 3대 명품을 유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