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즐겼던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
골프를 즐겼던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1501년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제임스 4세가 즉위했다.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16세기의 장을 여는 첫 해에 대관식을 치른 그는 무엇인가 보람된 치세를 하고 싶었다. 우선 외교적으로 늘 갈등을 일삼던 잉글랜드와 잠시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왕은 할아버지 제임스 2세와 아버지 제임스 3세가 내렸던 골프금지령을 해제하지 않고 있었다. 칙령에 의해 법적으로 골프는 금지됐지만 지난 50여년 간 골프는 절대로 백성들에 의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공공연히 숨어서 골프를 치면서 맥을 이어오던 터였다. 성직자들은 수도원 안에서 숨어서 골프를 즐겼다. 일반 백성들도 암암리에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인간의 골프에 대한 미련과 욕망은 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감옥에 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골프채를 놓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지만 골프는 빛을 보는 날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 속에 오랜 응어리를 묻은 채 골프는 반세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골프의 생명력은 질겼다. 왕은 고민했다. 자신 스스로도 골프는 치고 싶었다. 하지만 선대 왕들이 세워놓은 법령을 스스로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왕은 법 위에 존재하기에 왕 만큼은 골프를 쳐도 법에 위반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신망을 잃고 싶진 않았다.골프에 대한 열망이 하도 커서 제임스 4세는 왕비에게 ‘날이 갈수록 골프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거세지고 있다’며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다. 잉글랜드 출신이었던 왕비는 ‘국민들이 원한다면 하게끔 해야 된다’고 역설했다. 마가렛 튜터 왕비는 제임스 4세와 정략 결혼을 한 사이였지만 왕을 사랑하고 있었다. 왕비는 국왕도 골프를 치고싶다는 의견까지도 존중했다. 그러면서 ‘반세기도 지난 구시대의 칙령 때문에 고민할 필요없이 간단히 파기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해법을 제시했다. 할아버지인 제임스 2세가 ‘천하에 영양가 없는 쓸데없는 놀이’라고 했던 골프였지만 구시대의 케케묵은 발상일 뿐이었다는 왕비의 지론이었다. 반세기 전 할아버지가 금지령을 발표했을 당시와 작금의 시대 배경이 사뭇 달라졌음을 인식한 현명한 왕비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왕실의 사고까지도 진화시키고 있었다. 50여년 전 골프 금지령의 주된 이유는 전쟁에서 병사들이 활쏘기 훈련은 하지 않고 골프에만 소일한다는 군기 문란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반 백성들까지도 골프에 미쳐 나라 전체의 기강이 문제시됐기 때문이었다. 16세기에 들어오면서 시대 상황은 변하고 있었다. 인류는 화약이라는 것을 발명했다. 중국에서부터 들여온 화약은 이제까지 치르던 전쟁을 한꺼번에 뒤집어 놓았다. 창과 칼로 대변하던 인류 역사의 전쟁은 이제 대포라는 가공할 만한 무기로 대치됐다. 창과 칼을 든 중세의 상징이었던 기사들은 자연스럽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궁사들은 활쏘기 보다는 대포쏘는 법을 배워야했다. ‘골프 때문에 활쏘기를 게을리한다’는 명분은 16세기 들어서면서 더이상 설득력을 잃게 됐다. 1502년 제임스 4세는 급기야 금지령을 해제했다. 그렇게 골프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왕은 그간의 금지령 하에서도 왕궁에서 조심스럽게 골프를 배웠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왕실 문서에 따르면 ‘국왕은 퍼스 지역의 활 제조업자에게 클럽과 볼을 주문하고 14실링을 지불했다’고 적혀 있다. ‘제임스 4세가 내기 골프를 쳤고, 승부에서 진 뒤 3실링을 왕실 국고에서 지불했다’라고 공식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국왕은 2월 한 달을 에딘버러의 골프장에서 밖으로 나오질 않고 내내 골프만 쳤다는 기록도 있다. 제임스 4세가 남쪽 잉글랜드와 휴전을 하면서 잉글랜드 헨리 7세의 딸인 마가렛 튜터와 정략 결혼을 한 것은 물론 정치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그가 골프를 치고 싶어서 잠시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라는 말이 백성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로 그는 골프에 반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사회에서는 ‘골프를 치고 싶으면 적국의 딸과 결혼하라’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제임스 4세는 스코틀랜드의 언어인 게일어를 마지막으로 공식 사용한 마지막 왕이었다. 제임스 5세부터 스코틀랜드는 영어를 표준어로 사용하게 된다. 제임스 4세로 인해 잉글랜드로 퍼진 골프는 이제 궁중에서만 즐기던 놀이일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즐기는 놀이가 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에서 골프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골프가 비로소 스코틀랜드를 떠나 타 국가로 퍼져나갔을 의미했다. 잉글랜드를 계기로 골프는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한 가지 불행한 사실은 제임스 4세는 골프를 사랑했지만 불과 10년밖에 골프를 치지 못했다.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치세 11년 만에 잉글랜드와의 평화 협정은 깨졌고, 그는 군사를 이끌고 손수 플로덴 전투에 참가했다. 1513년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는 3만 명 이상의 대규모 전력을 배치했다. 상대 잉글랜드의 수장은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이었다.*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으며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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