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④자영업자에서 보이스피싱 피의자로…박동진(40)씨 이야기
“박동진 씨, 보이스피싱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출근길 지하철역. 불쑥 나타난 경찰들이 순식간에 주위를 에워쌌다. ‘미란다 원칙’을 빠르게 읊조리곤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한 달간 했던 아르바이트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역할이었다고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까지 보냈는데…. 혹여나 주소를 보고 가족에게 찾아가 해코지라도 할까 겁이 났다. 이제야 안 것이지만, 기우였다. 그들에게 우리는 잡히면 버려지는 ‘병정’이었을 뿐이니까.
작년 겨울은 유독 찼다. 경기도 한 소도시에 있는 카페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루 14시간씩, 13년을 일궈왔다. 코로나19에도 굳건히 버텼건만 정부가 연말에 발표한 집합금지 조치는 모든 것을 바꿨다. 잘 될 땐 하루 80만원이었던 매출이 0원이 됐다. 상가 2층에 위치한 까닭에 테이크아웃 손님도 없었다. 어린 딸을 둔 외벌이 가장으로서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12월 한 달. 집합금지가 풀릴 때까지 딱 한 달만 가게를 닫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자고 마음을 먹었다.
코로나가 확산될 시기었기에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재 운송 알바. 1종 보통 운전면허 소유자 가능.’ 일용직 공고가 올라오는 네이버 밴드에서 구직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인사 담당자와 연락하니 “이미 알바생을 구해 마감됐다”며 “거래처 수금 업무를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해보겠냐”며 제안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재 운송 알바는 미끼였지만 그땐 재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당장 가게 월세가 밀릴 위기였다.
장 실장이라는 사람은 자기회사가 저축은행과 거래하는 추심업체라며 “악성 채권을 싸게 사들여 시세차익을 남기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왜 고객과 계좌이체로 거래하지 않냐”고 묻자 “세금을 감면하기 위한 방법이며 절대 불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렸다. 합격 통보를 받곤 개인 신상 정보가 담긴 서류 여러 장과 셀카를 보냈다. 정 실장은 “금전을 다루는 업무기에 보안 차원에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장 실장은 매일 고객과 만날 장소를 일러줬다. 한 달 동안 수도권에서 만났던 고객은 10명 남짓. 약속 장소에서 나가면 항상 회사 관계자와 통화 중이던 고객들은 전화기를 건넸고, “박동진입니다”라고 확인하면 “빨리 일을 처리하고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가볍게 목례만 할 뿐, 한 번도 고객과 말을 섞지 못했다. 여러 번 만난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그저 단골이라고 여겼다. 전달받은 현금은 지시대로 회사 계좌로 무통장 입금했다.
주로 수도권에서 일했으나 간혹 지방 출장도 있었다. 장 실장은 “세금 때문에 교통비는 현금으로 결제하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경찰의 추적을 피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매번 현금 쓰기가 불편해 개인카드로 택시를 결제하고 KTX 탑승권을 끊었다. 콜택시 회사에 전화해 택시를 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 흔적을 따라와 체포했다. 장 실장은 잠적했다.
모두가 그랬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중국에 몸을 숨기고 짜인 각본으로 병정만 부리면 된다고. 그 병정은 돈이 궁한 취준생, 실직자, 자영업자라고. 허탈했다. 멍청하게 속지 않았더라면…. 피해자들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괜한 코로나 탓을 해봤지만 무력감과 죄책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하루하루를 좀먹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살이 빠졌다.
피해금은 수억원. 합의금부터 마련해야 했다. 카페를 폐업해 집기를 팔았다. 한 단골손님이 “인생 카페였는데 왜 문을 닫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합의금을 벌기 위해 궂은 일을 시작했다. 집도 팔 생각이었다. 피해자들에겐 죄인, 가족에겐 보금자리조차 지키지 못한 가장이었다. 죽음으로만 속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진 곳에 죽을 자리를 봐뒀다. 아내와, 엄마, 장인, 장모에게 유서를 남겼다. 어린 딸에겐 차마 쓰지 못했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했다. 가장 값싼 방법을 택해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잠든 딸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 빌었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이 사실을 안 아내는 “저 핏덩이 두고 죽으면 평생 죄짓는 거야”라며 가슴을 쳤다.
하루 24알의 정신과 약을 먹으며 버텼다. 죽기를 단념 한 건 우연히 마주한 풍경 때문이었다. 비 오는 날 한 우산을 쥐고 나란히 걸어가는 부녀를 보며 먼 훗날 딸과의 미래를 떠올렸다.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어떻게든 합의금을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주기로 했다. 꽃 한 송이를 사서 죽음을 기도했던 자리에 놓곤 스스로에게 명복을 빌었다.
일부터 구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한다. 주간엔 제조업 회사에서, 야간엔 물류센터에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도착하면 씻은 후에 새벽 4시까지 판사에게 보낼 자필 반성문을 쓴다. 변호사는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도 쓴다. 수면 시간은 4시간 남짓. 쉼 없이 도는 하루지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곧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반년이 지나서야 피해자 모두에게 합의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몇 달 간 모은 월급에 신용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장인은 평생 일군 재산의 일부를 선뜻 건넸다.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변호사는 “전원 합의해도 실형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반인도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 강력하게 처벌받는다고 했다.
“아빠, 요즘 무슨 일 있지?”
7살 딸은 요즘 묻는다. 그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 “내가 나중에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때 말해줘”라고 어른처럼 말한다.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진 것인지….
“아빠 곧 미국 출장간다.”
혹시 몰라 딸에게 말했다. 아이는 그 말을 믿어준 것 같다.
“아빠, 맨날 전화 할 거지?”
그래도 아이가 반문한다.
“그건 어려울지도 몰라.”
마지못해 대답한다. 어쩌면, 몇 년 뒤에나 볼 수 있을지도 몰라.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 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②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③ 보이스피싱 피의자 57%, “위기에 도움받을 ‘관계자본’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