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K-게임, K-확률, K-도박...부끄럽지도 않나!”
넥슨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마비노기’의 확률 조작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유저들이 지난 1월부터 이어오던 트럭 시위를 ‘버스 시위’로 확대했다. 연이은 성명문과 불매 운동 압박에도 회사 측이 확률을 공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유저들은 “확률이 공개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넥슨이 전격 꼬리를 내렸다.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아이템 강화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다. 아이템 정보를 부정확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았던 ‘무작위·랜덤’ 표현을 없애고, ‘확률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마비노기 유저들은 온라인 게임 관련 커뮤니티 등을 통한 모금을 토대로 이날부터 오는 12일까지 서울 여의도(국회 앞), 경기 성남(분당구 판교 넥슨 본사 주변) 등 지역에서 ‘시위 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 지난 1월 말과 2월 중순 트럭 시위에 나선 데 이어, 규모를 버스로 키워 나서는 세 번째 물리적 시위다.
버스 외부에 래핑된 문구는 기존 트럭 시위 때보다 강경해졌다. ‘그런 게임 만들고 가족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K-게임, K-확률, K-도박. 국격이 살살 녹는다’ ‘되돌아온 바다이야기, 숨겨왔던 영업비밀, 이젠 게이머도 못 참는다’ 등이다. 특히 넥슨이 지난해 업계 처음으로 매출 3조원을 돌파한 것을 거론하며 ‘확률 조작으로 쌓아올린 부끄러운 3조 클럽’ 이라는 문구도 써넣었다. 버스 두 대 운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1000만원에 육박한다. 통상 트럭(3.5t 기준) 한 대 래핑에 들어가는 비용의 2.5배 이상이 필요한데, 기존보다 응집력이 강해진 셈이다.
유저들의 반발은 게임 내 ‘세공’이라는 시스템을 향해 있다. 세공 키트라는 아이템을 사용할 시 무작위 확률로 장비에 성능이 추가되는데, 보다 좋은 성능을 얻기 위해 현금으로 결제하는 유저들도 상당수다. 이에 각 세공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꾸준히 이어졌다.
이에 넥슨은 “기존에 공개해온 캡슐형 아이템에 더해 ‘유료 강화·합성’의 확률을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게임사들은 업계 자율규제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유료 구매한 ‘캡슐형’(랜덤박스) 아이템의 뽑기 확률만 공개하기에 확률 공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에는 무기·갑옷 등 아이템을 강화하는 작업에도 유료 확률을 부여하는 게임이 많은데, 이런 확률은 전혀 공개되지 않아 최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의 대표적인 과금 요소로 비판 받았다.
이날 넥슨이 공개하겠다고 밝힌 것은 바로 이런 ‘아이템 강화’의 확률이다. 넥슨은 “무작위·랜덤 등 유저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용어의 사용도 피하겠다”며 “확률 관련 용어를 사용할 경우 연관된 확률표 등을 추가 제공해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용자들이 확률을 검증할 수 있는 “확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도 자체 개발해 연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게임별로 확률 검증 시스템을 제공해 이용자들이 뽑기 확률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 해외 게임업계에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조치다.
넥슨은 확률 추가 공개를 이날 중으로 메이플스토리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를 위한 보상안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이날 사내 시스템에 편지를 띄워 “이용자분들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에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게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있는데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고 사과했다.
또 “게임별로 이용자를 위한 투명한 정보 공개라는 대원칙이 녹아 들어가는 작업을 하겠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방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아닌, 이용자들이 더 편하게 정보에 접근하도록 한다는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라고 강조했다.
앞서 유저들은 “세공 확률 공개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했음에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이유와 검토 상황, 일정을 공개하라”는 등 요구를 담은 성명서를 회사 측에 보냈다. 이 밖에도 접속 중지 운동, 국회 청원 등 강경 대응 중이다. 버스 시위를 위한 모금을 주도했던 한 마비노기 유저는 “로드맵(업데이트 계획)의 내용은 지난 한 달간 우리가 요구해 온 것과 거리가 먼 결과물이었다”며 “우리의 제1 목표는 유저들의 소비자 권리 확보다. 세공 확률이 공개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템 뽑기 확률 의무 공개를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게임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발의돼 최근 관련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논의를 거친 상태다. 아울러 마비노기 등 확률 조작 논란이 일고 있는 게임에 대해 공정위를 상대로 한 정치권의 조사 요구도 커지고 있다. 만약 게임 확률 문제로 게임사들이 공정위 과징금을 부과받는다면, 3년 전 처벌(공정위 과징금, 넥슨·넷마블 각각 4500만원)에도 개선이 없었다는 지적이 일며 게임법 개정안에 반대한 명분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