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한테도 할 말은 한다” 재계 변화 이끄는 MZ세대
단체 행동 주도 등 경직된 기업 문화 빠르게 변화
코로나19 이후 목소리 더 커져
전문가들 “기업들도 이 같은 변화에 선택 기로”
[헤럴드경제=양대근·정세희 기자] #. 서울에 거주중인 30대 직장인 A씨는 현재 스포츠용품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다. 주말마다 운동복과 용품 리뷰 등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석달 만에 3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이씨는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이 회사에 들어갔는데,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유튜브를 하게 됐다”면서 구독자가 더 늘어날 경우 전업 유튜버로 전향할까도 생각 중이다.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MZ세대가 기업 문화를 근간에서부터 바꾸고 있다. MZ세대는 198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다. ▶관련기사 3면
연초 주요 대기업들을 휩쓸었던 성과급 논란을 비롯해 그동안 노조 설립에 소극적이었던 업종까지 활발하게 집단 행동을 벌이는 것과 관련 “그 중심에 MZ세대가 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 “총수 앞이라도 할 말 한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LG전자의 사무직 노조준비위원회는 전날 오전 서울지방노동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다. 약 500여명의 LG전자 사무직 직원들이 노조 가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직이 아닌 사무직 직원들이 별도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최근 회사 내 낮은 임금인상률과 적은 성과급에 따라 누적된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회사 익명 커뮤니티에서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사무직을 대변할 노조를 만들자”는 의견이 모이면서 노조준비위원회가 결성됐다.
같은 날 국내 IT기업을 대표하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직접 연단에 서 눈길을 끌었다. 두 총수는 최근 사내서 논란이 일었던 성과급과 인사평가 문제 등을 두고 직원들과 2시간 넘게 열띤 대화를 나눴다. 중간중간 젊은 직원들의 ‘돌직구 질문’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들 역시 젊은 직원들과의 거리 좁히기가 큰 화두 중 하나다. 삼성전기에서는 경계현 사장이 직접 나서 매분기 직원들과 함께 경영설명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성과급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비교적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면서 다른 기업들과 달리 성과급 관련 큰 잡음이 없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자랑했던 은행권도 최근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최근 과장, 부장이라는 직급 대신 영어식 이름을 부르는 새로운 문화를 전 계열사와 영업점으로 정착시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팀장·부장하기 싫어요” 기업들 골머리=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부쩍 늘어나면서 기업 문화의 무게중심이 MZ세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주 1, 2차례나 경우에 따라서 아예 출근을 안 하는 기업도 생겼다”면서 “이제 사내 조직생활이라기 보다는 자기 업무와 동시에 남는 시간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최근 ‘워라블(work-life blend)’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워라블이란 ‘일과 삶을 적절하게 섞는다’는 의미로, 개인이 원하는 커리어를 이루기 위해 삶과 일의 경계를 없앤다는 것을 말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주말 카페를 운영하거나, 퇴근 후 유튜브 제작에 골몰하는 직장인이 많아지는 것도 이 같은 변화의 일환으로 꼽힌다.
회사 측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전자 관련 대기업의 부장급 인사인 B씨는 “최근 부서내에서 팀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라고 호소했다. 평소 후보로 점찍었던 40대 직원은 “돈을 더 줘도 안 하겠다”고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설 교수는 “이제 기업들의 선택지는 (이 같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허용할지 아니면 묵인하거나 거부할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대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같은 문화가 확산할 가능성 충분히 있기 때문에 눈여겨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