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중소기업 사장인 갑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누구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식에게 ‘각자도생’하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갑수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한다. 그 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건넨 한 마디에 그가 눈물로 터득한 씁쓸한 인생의 진리가 담겼다.
“밤 10시까지 딱 1시간만 더!” 최근 자영업자들은 밤 9시 영업 제한을 풀어달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딱 1시간만 더’ 문구가 담긴 사진을 연이어 올렸다. 거리로 나와 삭발 시위에 나선 자영업자들도 있다. 하지만 수도권 내 잠복 감염의 위험이 크다는 방역 당국의 판단하에 수도권 지역의 영업 제한은 유지됐다. 지난 7일 정부의 결정에 반발해 자영업자는 밤 9시 이후에도 가게문을 여는 ‘점등시위’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조치가 바뀌지 않는다면 불복시위를 나설 계획이다.
처음부터 자영업자들이 불복을 외친 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자영업자는 방역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계층보다 많이 졌다. 영업 제한 완화 요구는 그동안 쌓인 불만과 함께 이제는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는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이 요원한 것도 이유다. 재난지원금이 3차례 지급되고, 4차 재난지원금이 논의 중이지만 현 수준의 지원으로는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더 많은 지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정치권이 내놓은 이익공유제는 논란만 낳고 있다. 이익공유제는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만큼 유인책이 강하지도 않고, 왜 기업이 대의 앞에 이익을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도 부족하다. 공감받을 만한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고통스러운 날들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다른 계층에게 사회적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정부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자, 남의 일로 치부되고 있다. 지난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추가로 세금을 낼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22.5%에 불과했다. 특이한 점은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79.8%에 달한다는 것이다. 다른 계층에게 연대 또한 받지 못한 자영업자들 앞에 이젠 ‘방역을 위해서’ ‘시민을 위해서’라는 말은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련의 사회 현상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가 지나고 이 시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지 말이다. 누군가는 시대가 남긴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며,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칠 것이다. 사람들은 팬데믹 시대로 어떤 인생의 교훈을 얻을 것이며, 미래 세대에게는 이 시기를 어떻게 설명할까. 예상되는 몇몇 말이 떠올라 벌써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