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때 금강스레트공업 창업
큰형님 도움없이 기업 키워내
2000년 중반부터 ‘집안 후견인’
도료·유리·실리콘 국산화 선도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도 앞장
“인재양성·정도경영자의 모범”
지난달 30일 타계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리틀 정주영’으로 불리웠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으로, 형제들 중 외모는 물론 말투나 성향, 소탈함 등에서 가장 닮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인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 그늘에 들어가지 않고 22세 때인 1958년 KCC그룹의 모태인 금강스레트공업을 독자 창업했다. 그러면서도 85년(1936~2021년) 그의 인생에서 큰 형님은 스승이자 멘토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21살 나이 차인 큰 형님을 그는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랐다.
1999년 현대그룹의 계열분리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범 현대가의 정통성을 지키며, 집안의 맏어른이자 후견인 역할을 자처했던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고인은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사업에 진출, 건축자재·화학소재 전문그룹으로서 KCC의 면모을 확립했다. 이어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 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 2005년에 사명을 KCC로 변경했다. 건자재에서 도료, 실리콘, 자동차유리, 첨단 화학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소재기업으로 키워냈다.
고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에서 회사를 넘겨받거나 사업부문을 떼어 내 독립한 다른 형제들과 달리 큰 형님의 도움을 마다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래서 평소 “큰 형님 덕에 KCC그룹을 키워냈다”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자력으로 KCC를 재계 30대 그룹으로 일궈낸 자부심이 강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선 건축자재를 주력사업으로 시작한 만큼 정주영 명예회장과 현대가의 후광을 일정 부분 입었다고 보기도 한다.
고인의 발자취는 국내 화학소재, 건축자재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1974년 건축용 도료제조업체인 고려화학을 세우며 페인트, 실리콘 등 유기화학부문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현 KCC건설의 전신인 금강종합건설을 설립했다.
특히,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건축·자동차·선박도료)·유리(자동차·일반유리)·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수입을 대체했다. 건축·화학소재 전문그룹으로서 기술 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는다.
이밖에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에 성공했으며,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 및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재료 국산화에도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도료 관련 독자기술을 확보, 도료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2003년부터는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일곱번째 국가가 됐다.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기실리콘 원료부터 1·2차 제품까지 일괄 생산하는 기업은 KCC가 유일하다.
2019년엔 미국 모멘티브퍼포먼스머터리얼스를 인수하며 글로벌 화학소재 선두기업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실리콘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지목하고 본격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KCC 측은 “고인은 평소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경영자였다”며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인재육성을 위해 동국대, 울산대 등에 사재 수 백억원을 쾌척하며 국가 인재 양성에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타계로 현대가 1세대인 ‘영(永)’자 항렬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 그 뒤를 2세대 몽(夢), 3세대 선(宣) 자가 잇고 있다. 유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