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 폐암치료제 ‘렉라자’ 31번째 등재

허가받은 신약 중 7개 시장에서 사라져

카나브 등 만성질환치료제는 승승장구

개발 의미있지만 장수제품 개발 힘써야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제약 산업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자체 개발한 국산 신약은 30개지만 성적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제품은 개발이 중단되거나 허가가 취소돼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반면, 몇몇 제품은 매년 매출이 증가하며 시장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산 신약의 개발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시장에서 선택받아 오랜 기간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한 ‘렉라자’ 31번째 국산 신약…“오픈이노베이션 성공 사례” 의미=유한양행은 18일 자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단 임상 3상을 수행하는 조건부 허가다.

렉라자는 국내 신약으로는 31번째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번 신약 허가는 지난 2018년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의 ‘케이캡정’ 이후 3년 만이다.

렉라자는 1~2세대 EGFR 표적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T790M 돌연변이 양성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에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T790M 돌연변이 내성에 강한 3세대 표적치료제로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어 뇌전이가 발생한 폐암환자에게도 우수한 효능 및 뛰어난 내약성을 보였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유한에게 렉라자 허가는 한 제품의 허가 이상을 의미한다. 특히 이 치료제는 현재 제약산업의 큰 화두인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으로 탄생한 제품이다. 유한은 2015년 국내 신약 개발기업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로부터 전임상 직전 단계에서 후보물질을 도입했다. 이후 자체적으로 물질 최적화와 공정 개발, 전임상과 임상을 통해 약물 개발에 성공했다. 이 약물의 가능성을 본 글로벌 제약사 얀센은 지난 2018년 최대 1조4000억원(계약금 5000만달러) 규모에 판권을 사갔다.

또한 이번 허가로 유한은 국내 대표 제약기업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굳힐 수 있게 됐다. 유한은 수년째 제약사 중 매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자체 개발에 성공한 신약은 2005년 허가를 받은 항궤양제 ‘레바넥스정’ 뿐이다. 실제 유한 매출의 상당 부분이 글로벌 제품을 도입해 대신 판매(코프로모션)하는 것에서 나오고 있어 전체 매출에서 유한 제품의 지분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더구나 항암제는 다른 치료제보다 개발이 어려워 글로벌 제약사들도 개발 중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발된 항암제는 6개 정도이며 이 중 폐암치료제는 2016년 허가된 한미약품의 ‘올리타정’ 뿐이다. 더구나 올리타정은 임상 3상에서 부작용이 발생해 결국 개발이 중단된 미완의 항암제다.

이정희 유한양행 대표이사는 “렉라자는 유한양행의 신약개발 역량과 국내 연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혁신신약으로 개발 단계부터 긍정적인 의학적 평가를 받아온 국산 신약”이라며 “이번 허가로 국내에서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7개 제품, 허가 취소·개발 중단 등으로 사라져=지난 1999년 SK케미칼이 개발한 항암제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이번 렉라자까지 20여년간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은 총 31개다. 하지만 신약 허가 후 행보는 제각각이다.

이 중 식약처의 허가 목록에만 존재할 뿐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품은 7개다. CJ제일제당(현 HK이노엔)의 농구균예방백신 ‘슈도박신주’는 임상 3상을 조건으로 2003년 허가를 받았는데 임상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서 품목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동화약품의 항암제 ‘밀리칸주’도 2001년 허가 획득 후 임상 3상을 진행하던 중 시장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15년 품목허가를 취하했다.

2015년 허가를 받은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정’과 ‘시벡스트로주’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는 출시됐지만 국내에서는 낮은 시장성과 약가 등의 이유로 출시되지 않았다. 2016년 큰 기대를 받으며 허가를 획득한 한미약품의 올리타정은 이후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이전 계약이 해지되고 임상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며 개발이 중단됐다.

또 대웅제약이 개발한 ‘이지에프외용액’은 관련 규정 변경으로 신약에서 탈락됐다. 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로 주목을 받았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는 허가 당시 제출한 원료와 실제 제품의 원료가 다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결국 허가가 취소됐다.

7개를 제외한 제품 중에도 아피톡신주, 자이데나정, 엠빅스정, 제피드정, 리아백스주 등은 허가는 받았지만 급여가 되지 않아 대부분 생산실적이 10억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카나브·제미글로 등 만성질환치료제는 ‘승승장구’=반면 국내 개발 신약 중에서도 잘 나가는 제품들이 있다. LG화학의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는 2012년 허가 이후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며 지난 해 국산 신약 최초로 연매출 1000억원을 넘었다. 2010년 허가를 획득한 고혈압치료제 ‘카나브정’도 출시 이후 매년 매출 그래프가 우상향을 그리며 지난 해 카나브패밀리의 매출은 1000억원을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 종근당의 당뇨병치료제 ‘듀비에’, 동아에스티의 당뇨병치료제 ‘슈가논정’ 등이 허가 이후 꾸준히 성장하는 제품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신약 중에는 아무래도 2010년 이후에 허가를 받은 제품들, 그 중에서 카나브나 제미글로처럼 만성질환치료제의 매출 성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반면 그 이전에 허가된 약물들은 시장 상황, 제품의 경쟁력 등 여러 환경으로 인해 사실상 시장에서는 사라지거나 존재감이 없는 제품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산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출시 이후 시장에서 꾸준히 선택받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선구안도 필요하다”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국산 신약 개발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손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