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의원입법안보다 정부안 더 후퇴…‘처벌법’아닌 ‘면제법’ 주장

경영계, 대표자 형사처벌, 법인벌금, 징벌적 손해배상 4중처벌 가혹

책임·처벌 낮춘 정부안 임시국회 통과 추진…노정관계 악화 불보듯

[헤럴드경제=김대우 기자] 일터에서 사람이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국회 심의가 시작된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기존 발의안보다 후퇴한 개악안”이라고 비판하고, 경영계에서는 “독소조항을 빼달라”고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 [헤럴드DB]
국회 본회의장 [헤럴드DB]

30일 고용노동부와 국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정부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심의가 본격화되면서 노동계는 당초 입법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개악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경영계도 경영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독소조항을 빼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중대재해법 정부수정안은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정안을 바탕으로 산업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를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형사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손해배상 규모와 시행 시기 등에서 의원발의안보다는 규제수위와 처벌 강도가 약해졌다. 논란이 됐던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는 5배 이하라는 상한선 규정이 새로 포함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재해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삭제됐다. 처벌 대상 공무원에서 중앙행정기관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도 빠졌다. 또 법 적용을 1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하고, 50인 이상 100인 미만은 2년, 50인 미만은 4년 동안 유예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제1노총인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면제법”이라며 “경영책임자 처벌 강화, 형사처벌 명시, 발주처 처벌, 공무원 책임자 처벌, 인과관계 추정 도입 등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며 촉구하는 내용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온전하게 즉각 입법하라”고 반발했다.

입법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중대재해로 가족을 잃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지난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인 역시 동조단식에 돌입했다. 중대재해법을 ‘1호 공약’으로 내건 정의당도 정부안이 후퇴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손경식 경총회장은 지난 29일 중대재해법 법안심사소위 심의 직전에 국회를 찾아 “경영계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독소 조항’을 빼달라”고 호소했다. 손 회장은 대표자 형사처벌, 법인 벌금 부과,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에 대해 “4중 처벌은 가혹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1월8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정부가 책임자와 처벌 수준을 낮춘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노동계와의 첨예한 대립이 예상된다. 경영계 요구를 일부 반영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중대재해법도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상태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분간 노정관계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최근 ‘투쟁파’로 불리는 양경수 당선인이 3년간 민주노총을 이끌 신임 위원장에 오른 상태다. 그는 ‘전태일 3법’ 쟁취를 위해 내년 11월3일 총파업도 예고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노정관계 악화로 사회적 대화는 이전보다 어려워지고 피해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로 노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이럴 때일수록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더욱 머리를 맞대고 한 발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