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3법에 규제비용 폭탄
기업징벌 3법도 목전…재계 시름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올해 재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예측불허’다. 상반기 재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천재(天災)’에 가까웠다면, 하반기 규제입법 쓰나미는 피할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재계 충격은 더 컸다.
▶규제입법 끝내 국회 문턱 넘다…규제비용 폭탄 현실로 = 입법 논의 과정부터 재계의 반발이 거셌던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공정거래 3법’은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고 이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재계는 자칫 해외 투기자본에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미 국내 기업은 과거 수차례 단기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투기자본 공세를 겪은 바 있다. 1999년 4월엔 미국계 타이거펀드가 SKT 지분을 6.66% 매입한 후 적대적 M&A로 위협하며 6300억원 차익을 챙겼고, 2003년엔 SK(주) 지분 14.99%를 매집한 소버린이 경영권 장악을 시도, SK는 1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며 경영권 방어에 나서야 했다.
2004년엔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가 삼성물산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차익 실현 후 지분을 매각했고, 2006년엔 미국계 펀드 칼 아이칸과 KT&G가 유사 사례를 반복했다. 2015년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삼성물산이 갈등을 빚었다. 이미 수차례 해외 투기자본의 공세를 막아내며 천문학적 비용을 소진했던 재계는 외국 자본이 이번 상법 개정안의 허점을 재차 파고들 가능성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우려는 이미 현실화될 조짐이다. 상법 개정안 통과 직후 미국계 헤지펀드 화이트박스는 LG그룹에 계열 분리를 반대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현재 화이트박스는 (주)LG 지분을 0.6%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나 지분 5%를 넘지 않는 한 공개 의무가 없어 정확한 보유 지분은 알 수 없다. 상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 3월 감사위원 선출 시 구광모 LG그룹 회장(15.95%)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그 외 친족들도 마찬가지다. 화이트박스는 지분 3%만 보유하면 구 회장과 의결권이 같다. 외국 헤지펀드가 3% 이내 지분율로 나눠 연합할 경우 표대결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재계 반발이 거셌지만, 끝내 입법화됐다. 이에 따라 모회사 주주가 지분 1%(상장사 0.01%) 이상만 보유해도 자회사에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일례로, 삼성전자에 400억원을 투자하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자회사 7개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셈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에선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이나 일본은 제한적 요건으로 범위를 한정했다. 한국의 경우 적은 비용으로 기업 경영권 흔들기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지분율을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라 지주회사 전환 비용도 급증하게 됐다. 상장회사 지분 20%·비상장회사 지분 40% 보유 의무가 각각 30% 이상·50% 이상으로 늘어났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34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2019년 기준) 중 16개 비지주회사 기업집단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시 지분 확보에 약 30조1000억원이 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따른 일자리 손실도 23.8만명에 이른다는 게 전경련 추산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기업징벌3법’ =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도입도 연말 재계를 옥죄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징벌적손배배상과 집단소송제로 증가할 소송 추산액은 각각 8.3조원, 1.7조원으로, 총 10조원에 이른다. 재계는 공식적으로 법무부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상태이나, 현재까지 정부·여당은 입법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최근엔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추진되면서 30개 경제단체가 일제히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든 사망사고에 인과관계 증명 없이 책임을 부과하는 것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연좌제와 같다”고 토로했다. 재계는 집단소송제, 징벌적손배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을 더해 ‘기업징벌3법’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미 재계는 올해 코로나 여파로 심각한 경영 불확실성에 봉착했다. 코스피 상장기업 687개사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은 각각 1440조원, 84조원, 56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7%, 6.29%, 9.44% 감소했다. 그나마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 착시효과’가 크다. 이 중 삼성전자 실적을 제외하면 하락 폭은 각각 6.73%, 18.84%, 21.61%로 급증한다.
업종별로도 의약품을 비롯,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증가한 업종은 5개에 그쳤다. 운수창고(-18.62%), 화학(-13.64%), 철강(-11.26%) 등을 비롯, 12개 업종에서 매출이 감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한계기업 수는 전년 대비 44% 급증한 5033개에 이를 전망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제도실장은 “올 한 해 코로나 여파에 더해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제도를 연이어 성급하게 도입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