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3일 금융감독원 주도로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금융사 대응방안’ 회의가 열렸다. 금융사들의 오래된 불만이 표출됐다. 요지는 ‘왜 통신은 막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일어나기 위해선 두 가지, 즉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대포폰과 돈을 받을 대포계좌가 필요하다. 대포폰과 대포계좌를 일컬어 업계에선 ‘양포’라 부른다. 금융사들의 불만은 금융사들의 계좌 정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진짜로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선 ‘통신단계’에서부터 보이스피싱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7월 청주지법은 800여대의 대포폰을 만들어 유통한 20대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20대는 타인 명의의 선불폰 유심(대포폰)을 만들어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올해 6월 대구지검은 대포폰에 사용될 유심칩 460여개를 만들어 유통시킨 일당을 검거해 구속기소했다. 일당 중에는 휴대폰 대리점주도 포함돼 있었다. 올해 3월에는 한 관광 가이드가 7000개의 가짜 유심칩을 만들어 유통하다 덜미가 잡혔다. 항상 그렇듯 덜미가 잡히는 범죄는 ‘빙산의 일각’이다. 만들어진 대포폰 상당수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이용될 개연성이 높다.

보이스피싱(카톡피싱 포함) 등 온라인 금융사기가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9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피싱 사건은 모두 20만건에 이르고, 피해액은 2조4000억원을 넘어선다. 일각에선 진화하는 범죄 탓에 예방보다는 사후 대처가 최선이라 설명하지만 사실은 앞서 얘기했던 ‘양포’만 정확히 통제하면 보이스피싱 범죄 가운데 상당수는 막을 수 있다. 금융사들이 주장한 대포폰 통제는 일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선의 보이스피싱 예방책 가운데 하나다.

현행법상 범죄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계좌는 사람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계좌가 동결된다. 예컨대 A씨가 5개의 은행계좌를 가지고 있는데 이 5개의 계좌 중 하나라도 대포계좌라는 정황이나 신고가 접수될 경우 A씨 명의의 은행계좌 5개가 모두 한꺼번에 정지되는 구조다. 통신은 다르다. A씨가 5개의 휴대폰 회선을 사용하는데 그 중 한 회선이 범죄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이 되면 해당 번호 회선에 대해서만 통신정지가 이뤄지고, 나머지 4개 회선은 그대로 사용 가능하다. 범죄자 입장에선 명의자가 같더라도 회선만 바꾸면 계속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사들이 ‘통신은 왜 안막냐’는 불만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엇박자 통제의 이유는 관할 부처가 달라서다. 계좌 정지 권한은 금융위원회가 가지고 있는데 금감원에 권한을 위탁하고 있고, 통신 정지 권한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가지고 있는데 그 권한을 전파통신원에 위탁하고 있다. 부처가 다르니 대응 수위에 온도차가 확연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대응 주무부처가 금융위로 설계된 것 역시 한계로 꼽힌다. 컨트롤타워로선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사안 초기 ‘금융사기’라는 타이틀이 붙자 부처 명칭에 ‘금융’이 들어간 금융위가 담당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도 나돈다. 미국에서 금융사기는 범죄로 분류돼 미연방수사국(FBI)이 주무 부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