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안일 뿐 지키지 않으면 그만

다급한 세입자들 ‘슈퍼 乙’ 전락

월세 낀 반전세 2.5%룰 적용시

신규 세입자가 수억원씩 더 낸 꼴

결국 전셋값 도미노 상승 부를 것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 부동산에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연합]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잠실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 부동산에 매물 정보란이 텅 비어 있다. [연합]

‘전세 줄고, 월세 늘고’ 정부가 7월말부터 임대차2법 개정을 통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시행하면서, 시장에선 전세품귀 현상과 월세 낀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정부도 시장에서 지적한 부작용을 우려해 계약 갱신 과정에서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되는 전월세전환율을 지난달 말 4.0%에서 2.5%로 낮췄다. 전셋값 인상분을 월세로 전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세입자 월세 부담이 준다.

▶한 단지 내 전셋값 수억원 차이, 새 세입자에겐 무의미한 임대차법=전월세 전환률 2.5%의 경우 기존 계약전환 시에만 적용되고, 아울러 권고안일 뿐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가 집주인이나 집주인 가족의 실거주를 우려해 전세보증금을 상한선인 5%보다 더 올려주겠다는 세입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2.5% 전환율은 큰 의미가 없다”며 “임대인 중에는 (보증금을 주고 내보낸 뒤) 언제든 실거주할 수 있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전세매물은 더욱 줄면서 세입자는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시장에선 이 같은 세입자 거주권 보호를 위해 만든 각종 규제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이 쓰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전세 재계약도 무더기 실거래 등록이 이뤄지면서, 같은 단지 내 신규 계약 간 가격차가 2~3억원씩 나는 종전 거래가 고스란히 비교되고 있다. 월세 낀 반전세 계약 역시 2.5% 룰에 맞춰 계산하면, 새로운 세입자가 종전 세입자보다 수억원을 더 내는 셈이 된다.

실례도 있다.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210㎡(이하 전용면적)는 이달 17일 보증금 1억원, 월세 38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를 정부가 권한 전월세전환율 2.5%로 계산하면 전세보증금이 19억2400만원에 달한다. 지난 8월 이 아파트 전세가는 10억원이었다. 단지 내에서 9억원 차이가 나는 셈이다. 보증금 1억원당 월세 30~40만원인 종전 시장가액을 반영해도 2억원 가량 전셋값이 올랐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감정원에서 제출받은 전월세전환율 자료를 보면, 전환율이 2.5%로 인하되기 직전인 지난 8월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당시 법정 전환율보다 실제 전환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공실 등 임대차 관련 위험이 큰 지방으로 갈수록 전환율이 높아져 전국 8개도의 평균은 7.4%에 달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차시장은 실수요자로만 구성돼, 수요와 공급으로만 가격이 결정되는 곳인데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되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며 “이미 전셋값은 크게 올랐고, 월세 낀 계약도 증가세라 주거비용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송파구 리센츠 84㎡는 이달 들어 신고된 임대차 계약 14건 가운데, 월세 계약이 8건으로 전세계약보다 더 많다.

▶내년엔 ‘전셋집’ 더 없다…전셋값 상승 이어질 것=대통령까지 나서서 전세안정을 강조했지만 시장에선 전세난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서울 및 수도권에선 전셋값의 추세적 상승을 예상하는 이가 많다. 공급자가 ‘갑’, 수요자가 ‘을’이 되면 가격 협상 여지는 더욱 준다.

KB국민은행은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 전셋값이 0.51% 상승했다고 밝혔다. 9년래 주간 단위로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한국감정원도 2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이 70주째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월세 전환도 빠르게 나타나고, 신규 계약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임차인보다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는 “전세대란은 이제 시작”이라며 “내년 입주 물량도 큰 폭으로 줄어드는 데다가, 다주택자 매물 역시 퇴로를 만들어주지 않아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매매와 전세시장 모두 정부가 원하는 안정세에 접어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성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