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개발 성공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해야 최종 완성”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던 기간”
“AESA레이더 개발로 국가의 격 달라져…국민 성원 잊지 않아”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한국형전투기 개발 과정에서 AESA레이더 개발의 성공은 우리 전투기 개발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여겨진다. 해외 선진업체들의 기술이전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만 인식됐던 이 레이더를 개발 착수 3년여만에 국산화한 개발진들의 땀에는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서려 있다.
불가능에 도전한 국내 기술진들을 진두지휘한 신현익 국방과학연구소 항공기레이더체계개발단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입증시제(국내 기술로 AESA레이더 개발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시제품 레이더)를 제작,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다”면서 “AESA레이더 개발에 일단 성공했지만, 하드웨어에 이어 소프트웨어 개발 등 어려운 과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최종 완성까지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불가능이라 했던 AESA레이더 개발에 성공했다. 가장 어려웠던 난관은 무엇이었나?
▶먼저 AESA 레이다 개발이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개발 책임자로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완전한 성공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 완료 후, KF-X 시제기를 활용한 개발 및 운용시험평가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AESA레이더는 입증시제를 활용한 국외 시험항공기 비행시험(FTB) 등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사전 확인한 상태에서 하드웨어 제작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국내 개발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지상시험, FTB 비행시험 및 시험평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가장 어려웠던 난관은 2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입증시제를 제작하고, 두 번의 중간 점검을 통해 AESA레이더 개발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조기에 확인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를 위해 체계개발과 입증시제 개발을 동시에 수행했다. 만약 입증시제 개발을 2년 내에 성공하지 못하면, 체계개발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참여 인력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입증시제에 대한 두 번의 중간 점검은 물론 비행시험까지 정상적으로 마무리해 가장 어려웠던 난관을 극복했다.
-AESA레이더 도중 어떤 난관을 겪었나. 개발 과정에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2015년 미국의 4대 항공전자(항전) 장비 기술이전 거부로 국내 개발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과학연구소가 AESA레이더 국내 개발을 책임지게 됐다. 개발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입증시제 제작 외에 4가지 정도의 난관이 있었다.
첫째, 사업착수 이전에 있었던 시제업체 선정 결과에서 업체가 바뀌는 사건이 있었다. 국과연은 장기계획에 따라 국내 기술축적을 위한 AESA레이더 관련 핵심기술 과제를 2006년부터 수행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 핵심기술 과제를 수행하던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가 시제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연구개발의 연속성이 단절돼 개발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외부의 시선이 팽배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외업무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언론과 국회에서는 지금까지도 선정 과정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시제업체 선정 과정에서 정말로 문제가 있었다면 AESA레이더사업은 2016년 착수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국과연 인력들은 본연의 개발업무에 더해 새롭게 선정된 시제업체가 국과연이 축적한 관련 기술들을 최대한 빨리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까지 1인 2역을 수행해야만 했다.
둘째는 경험 부족에 따른 레이더 운용개념 수립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사업 착수 당시 국내 레이더 체계개발 경험은 지상·해상·무인기용 레이더에 국한돼 있었다. 전투기용 레이더 체계개발 경험은 전무했다. 따라서 최우선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인 운용개념 수립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으며, 국과연 내부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많은 고민 끝에 소요군(공군)과의 긴밀한 협조 및 관련 자료 공유를 통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공군의 협조로 국과연에 파견된 공군 측 인력은 국과연과 공군의 협조는 물론, 군 경험을 바탕으로 운용개념 수립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셋째는 사업 기간이 길고 시작이 급하게 이뤄진 관계로 일부 분야에 대해 체계개발 실행계획서에 세부계획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아 다소 규모가 큰 수정계약이나 추가계약 추진이 요구됐다는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수정계약은 FTB 확보 관련 내용이다. 민간항공기용 ‘제네릭(Generic) 레이돔’(민간항공기에 장착된 원형 레이더)과 KF-X용 ‘전투기 레이돔’(길고 뾰족한 레이더) 적용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자료조사 이후 2년여가 지나 수정계약을 마무리한 것이다. FTB 관련 수정계약을 적기에 마무리하지 못했다면 이후 계획된 상세설계(CDR) 검토회의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계약 관련 업무는 방위사업청과 긴밀한 협조 하에 필요성 등을 적극 설명하고 실무위원회 등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승인받고 추진했다.
넷째, 경험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이 컸다. AESA레이더 개발조직이 급하게 만들어졌고, 연구소 차원에서 사업의 중요성을 고려해 인력 확보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기존 수행사업에서 레이더 핵심인력을 영입하기가 어려워 다수를 신입 연구원으로 충원하게 됐다. 각고의 노력으로 4년여가 지난 지금은 그 당시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한 새내기 연구원들이 각자의 맡은 분야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단계로 성장했다. 특히 체계통합시험(SIT) 분야 업무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어 레이더 기술부와 다른 본부 개발 경험 인력을 적극 영입했다. 이들은 현재 지상시험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난관과 그 극복방법이 있었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FTB 수정계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18년 6월 5일 단장으로 부임한 이후, 업무 파악 중 가장 현안으로 눈에 들어온 업무가 FTB 계약 건이었고 이 건이 1년 이상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항공기용 레이더 개발에 있어 FTB 확보는 시험방안 수립을 위해 필수적이다. 1년 이상 표류하고 있었지만 업무 책임자도 명확하지 않았으며, 향후 감사 등의 부담으로 훈수는 열심히 두지만 누구도 주도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 무인기용 영상레이더(SAR) 개발에서 시험항공기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기에 FTB 수정계약 업무는 단장이 직접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을 잡음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추진방안 자료부터 예산자료까지 모든 자료를 단원에게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면서 업무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연구원들은 100여쪽이나 되는 자료에 본인 의견을 적고 전자파일을 통째로 보낸 뒤 단장이 알아서 정리하라고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직 내 소통을 강조하고 모든 연구원들에게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주면서 추진방안 등을 정리했기 때문에 잡음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FTB 수정계약에 대한 변경 금액을 돌이켜 보면,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AESA레이더 개발은 군-관-산-학-연이 힘을 합친 결과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은?
▶개발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주인공은 당연히 국과연, 시제업체, 시제협력업체 등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인력들이다. 맡은 업무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력들도 있다. 실제로 조용히 뒤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는 인력들이 훨씬 더 많다. 국과연 인력들이 섭섭해할 수도 있지만, 제가 20여년간 체계개발 사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사업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은 시제업체 참여 인력들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엄청난 일정의 압박을 받으면서 대부분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KF-X 사업은 방사청에서 사업단을 구성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단과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수정계약이나 추가계약을 추진할 때 타당성, 효율성, 예산 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관련 실무회의 등에서 승인을 받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방사청 사업단 또한 개발 과정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AESA레이더 기술을 보유한 것과 보유하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인가?
▶전투기용 AESA레이더 기술 확보로 대한민국이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무기 도입 시, 국내 개발 능력만 보여줘도 구매 비용은 하락한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항공기용 AESA레이더 관련 무기 도입 시, 가격협상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연히 국산 AESA레이더의 수출도 충분히 가능하다. 시제업체 또한 해외 전시회 등에서 AESA레이더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공군 조종사 입장에서 AESA레이더 개발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지나? 전술적 변화나 기대효과는?
▶전투기를 해외에서 구매할 경우, MFD(Multi-Function Display·다기능 시현) 화면 구성 및 각종 심볼 등을 제작업체에서 제공해 주는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개발한 AESA레이더를 사용하면 조종사들이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다. 조종사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UI(사용자 환경) 제공이 가능해진다.
향후에는 전투기는 물론 훈련기도 MSA(기계식 주사배열) 레이더 대신 AESA레이더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MSA레이더가 AESA레이더로 바뀔 때 가장 큰 기대효과는 빠른 빔 조향 특성과 유연한 파형 설계 등으로 동일 출력의 MSA 레이다 대비 탐지거리가 확대되고 다수의 표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작전 측면에서 AESA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가 MSA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보다 훨씬 우위의 전력이 되는 것이다.
-F-15K 등 다른 전투기에도 AESA레이더 적용이 가능한가?
▶AESA레이더는 사용되는 송수신모듈(TRM) 수를 변경함으로써 다양한 성능의 레이더 개발이 가능해진다. 현재 운용중인 전투기를 비롯한 모든 항공기 레이더에 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F-15K 등 국내에서 개발한 항공기가 아닌 경우 항전 장비 통합을 위해 제작업체의 인터페이스 관련 기술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AESA레이더 개발을 성원하는 국민들께 한 말씀?
▶AESA레이더의 완전한 성공을 위해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 AESA레이더 개발에 관심을 갖고 계신 '밀리터리 마니아'는 물론 국민들께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시면서 지속적으로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추가적으로 일부 언론 등에 꼭 부탁드리고 싶은 바가 있다. KF-X AESA 레이다 사업은 어려운 여건에서 급하게 시작했다. 전체 개발기간 또한 10년이나 되기 때문에 수행과정에서 수정계약 또는 추가계약 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계약은 사업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방사청 사업단에서 필요성 및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최종 승인된다. 업체 특혜 등의 자극적인 보도로 개발업무에 전념하고 있는 연구원들의 사기를 꺾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원들을 비롯한 모든 참여 인력들은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가일층 노력할 것이며, 현재 개발 중인 AESA레이더가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