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개월 만에 최악 수급 ‘대란 조짐’

매수·임대 수요 몰리며 시장 왜곡

갭투자 아파트 하락땐 보증금 위태

지난 13일 오후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
지난 13일 오후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

#지난달 21일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라인그린 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은) 18층은 2억원 보증금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한달 전 같은 층의 같은 면적 매맷값은 1억8200만원. 전셋값이 집값보다 1800만원이 더 높다. 이 아파트 9층도 같은 기간 1억9000만원에 매매 계약서를 썼는데, 얼마 뒤 1억8000만원에 전세가 거래됐다.

전세품귀 현상에 ‘패닉렌트(공황전세)’수요가 움직이면서, 전셋값이 매맷값을 따라잡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확산세다. 외지인·갭투자가 증가한 지역에 매수 수요와 임대차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 같은 시장 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8일 부동산 빅데이터 전문기업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호평동 라인그린 아파트가 속한 경기 남양주시는 전국에서 최근 3개월 간 ‘갭투자(전세낀 매매)’ 거래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남양주시에선 이 기간 267건의 갭 투자가 일어났고 이어 ▷경기 화성시(156건) ▷서울 노원구(144건)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137건) ▷경기 용인시 기흥구(127건) 순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남양주 지역에서 매매 후 직접 거주하지 않고 전월세 계약을 진행한 거래 중, 매매가격과 전세보증금 차이가 1000만원도 되지 않는 거래가 9건에 달했다. 전세보증금이 오히려 집값보다 비싼 거래도 눈에 띈다.

시선을 다른 수도권으로 돌려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샘터 2단지 59㎡는 6월 2억1500만원에 전세가 나갔는데 앞서 매맷값이 2억2400만원으로 고작 900만원 차이에 그쳤다. 해당 아파트는 최근 3개월 간 갭투자만 62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갭투자가 활발한 아파트다.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으면, 계약 만기 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다. 특히 갭투자가 많은 지역의 중저가 아파트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면, 임차인 입장에선 집값 하락 시 보증금 손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적은 돈으로 매매 차익을 기대한 집주인이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헐값에 집을 넘기면 보증금 보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지방에선 종종 매매가격과 별 차이가 없는 전세 계약이 나타나곤 했는데, 수도권에서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일반적으로 정주성보다 이동성이 강한 입지가 약한 지역에서 이 같은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 KB국민은행 리브온의 수도권 아파트 분위별 평균 매매가와 전세가를 비교한 결과, 1분위(하위20%)로 갈수록 전셋값 비중이 높았다. 수도권 1분위 평균 매매가격은 1억8600여만원인데, 전세가격은 그보다 5000만원 낮은 1억3200만원대로 집계됐다. 반면 5분위(상위20%)는 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중이 절반 수준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은 “전셋값이 매맷값보다 높은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면서 “세입자 스스로 보증금을 낮춰 차라리 반전세로 거주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또 “순수 전세 매물이 없는 ‘전세품귀’가 이어지다보니,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집값의 20%나 보증금을 더 낸 사례도 있다. 경기 부천시 중동의 해링턴플레이스 59㎡는 최근 2억9178만원에 매매 거래가 이어졌는데, 이 매물이 뒤에 전세보증금 3억4000만원에 계약서를 썼다. 마이너스 갭이 5000만원나 된다.

이 가운데 전세가격은 점점 더 오를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의 전세가격전망지수는 서울과 수도권 모두 2016년 1월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다.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전망에 힘이 실리는데 서울은 131.9, 수도권은 126.0이다. 성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