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직업공무원 불신…주위 정무라인에 둘러 싸여

대권주자 반열 오르자 정무라인 공천 위해 충성 경쟁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잘나갔던 것으로 보였던 서울시가 흔들리고 있다. 갑작스런 시장 유고도 힘든 상황인데 인권의 대명사였던 박원순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현 지도부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그럼 그토록 단단했 보였던 서울시가 왜 이렇게 흔들리게 됐을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직업공무원을 믿지 않았다는게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공무원을 믿지 않았던 박시장은 결정에 대한 이중성도 갖고 있었다. 박 시장이 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취임하고 첫 간부회의에서 모든 간부들이 박 시장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아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때 박시장이 말을 시작했다. “난 소신있게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며 “어떤 말이라도 하라”고 했다. 이에 용기를 낸 한 국장이 서울시장을 잘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소신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두달 뒤 그 국장은 구청 부구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후 공무원들은 박시장에게 직언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이유는 박 시장이 처음 보궐선거에서 자력으로 서울시에 입성하지 못했다.비록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나 당시 민주당과 노동계 그리고 시민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이후 박시장은 시장실 주위를 그들로 가득 채웠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과 시장의 소통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비서실장은 직업공무원이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시장은 정무직 비서실장을 고집했다.

서울시가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은 박 시장 집무실이 있는 6층 사람들 때문이다. 박 시장이 재선을 한뒤 6층은 급격히 변했다. 대선주자로서의 박원순이 부각됐으며 이에따라 정치에 뜻을 품은 많은 사람들이 6층으로 몰려왔다.

그러면서 시청 6층이 청와대화(化) 되어 갔다. 즉 시민을 위한 시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권주자 박원순한테 잘보여 공천을 받기 위해 충성 경쟁을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박 시장은 눈과 귀가 멀기 시작했다. 직언 하는 사람도 없었다. 공무원을 믿지 못했던 박 시장은 그들에게 점점 집착했고 그들은 박시장에 잘보이기 위해 듣기 좋은 이야기만 했다.

몇해전 부터 서울시에도 최순실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실·국·본부장들이 시장에게 보고하려고하면 이 ‘서울시의 최순실’에 의해 번번히 좌절됐다.

지난해 7월 박시장이 멕시코와 콜롬비아 출장을 갔다. 당시 동행했던 기자를 박시장이 조용히 불렀다. 시정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

“시장님 서울시의 최순실을 아시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박시장은 “아니 그런 사람이 있냐”고 “누구냐”고 물었다.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서울시에 정무라인으로 들어오고 7~8년이 지나 서울시정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멋대로 휘두른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하니 교체하시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믿는 사람만 믿는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을 소중히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오성규 전 비서실장이다. 박 시장은 오성규 실장을 지속적으로 기용했다. 처음에는 서울시설공단 사업운영본부장을 시킨뒤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서울시 1급 출신이 가던 자리)으로 3년을 시키고 임기를 마치자 시장 비서실장(3급)으로 재기용했다. 박시장이 3선한 뒤 오성규 실장은 서울시의 최순실과 넘버투를 다투고 있었다.

지난 4월 서울시 기자실도 코로나 19로 인해 폐쇄 됐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서울시 정무라인들에게 사직서을 받았다는 자료가 나왔고 오성규 비서실장과 소위 말하는 ‘서울시의 최순실’도 명단에 들어 있었다. 시장께서 큰 결정을 하셨구나 하고 안도를 하자 마자 박시장은 ‘서울시의 최순실’을 더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책 특보로 재기용 했다. 많은 공무원들이 실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자 이들 대부분은 전화도 받지 않고 잠적한 상태다.

박 전시장의 인사 실패가 서울시 참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