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텔레콤 시절 ‘빌링시스템’ 구축 업계 큰 공·LG 창원공장 혁신교육 등 현장서 진두지휘…임원직 22년 ‘영업통’ 노하우 담은 책 출판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게 운명이었습니다. 기회는 끝말잇기처럼 계속 새롭게 연결되더군요”

수많은 산업군 중에서도 ‘통신’ 시장의 경쟁은 유독 치열하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플레이어’가 3곳 밖에 되지 않고, 한정된 내수 중심 시장인 탓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이끄는 핵심 산업인 만큼, 작은 기술 경쟁 하나에도 날선 신경전을 펼친다. 이 때문일까. 통신사에서 또 다른 통신사로 자리를 옮기는 이직이 흔치 않은 곳이기도 하다. 이 ‘금기’아닌 ‘금기’를 깬 인물이 바로 김철수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이다. 통신 3사를 모두 거치고 업계 ‘도장을 깬’ 김 사장의 인생 스토리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컨설팅으로 시작된 통신과의 인연=김 사장은 통신 업계에서 3사를 모두 거친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뼛속까지 통신인’일 것 같지만 사실 김 사장이 통신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그는 “한 번도 의도적이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며 “내가 이렇게 오래 통신 업계에 있게 될 줄은 몰랐다”고 운을 뗐다. 그의 시작은 ‘컨설턴트’였다. 그는 “앤더슨 컨설팅이란 컨설팅 회사에 있으면서 주로 통신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됐다”며 “그 때 알게 된 분을 통해 1994년 대한텔레콤에 가게 됐는데 통신 업계에 발을 들인 첫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대한텔레콤은 SK텔레콤의 전신이다. 끝말잇기의 첫 ‘단어’를 만난 셈이다. 대한텔레콤에서 또 다른 컨설팅 기업 PwC로 자리를 옮겼지만 통신과의 인연은 한층 깊어졌다. 김 사장은 “PwC 회사에서는 통신 분야 책임자로 일을 하게 되면서 통신과 관련된 심도 깊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통신을 한층 이해하고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기회”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그의 두번째 ‘끝말잇기’를 시작할 중요한 기회를 맞게 된다. 남용 전 LG텔레콤(LG유플러스 전신) 부회장을 만난 것이다. 남 전 부회장은 김 사장에게 LG텔레콤 합류를 제안했다. 당시 그는 남 전 부회장의 ‘러브콜’을 거절했다. 김 사장은 “내가 LG텔레콤에 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봤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미 통신과 한몸인 운명이었던 것일까. 마침내 그는 1999년 LG텔레콤에 입사, 최고정보책임자(CIO) 명함을 새로 받았다. 이로써 본격적인 ‘통신인’으로서의 기로에 접어들었다.

LG텔레콤이 합병을 거쳐 지금의 LG유플러스가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하면서 김 사장의 영역도 다양해졌다. 1999년 LG텔레콤에 합류해 2012년 영업본부장을 거쳐 퇴사 때까지 맡은 부서만도 수두룩하다. 그는 “CIO를 시작으로 영업본부장, 사업본부장, 마케팅, 비즈니스개발, 유선과 무선을 합친 MS본부장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끝말잇기처럼 기회가 계속 이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세 번째 ‘끝말잇기’는 ‘KT’다. LG유플러스에서 KT로 옮기는 과정에선 우여곡절도 있었다. 영업 경쟁력 확충을 위해 KT가 김 사장을 ‘스카우트’하면서 LG유플러스와 KT의 법적 다툼까지 불거졌던 것. 뷰티, IT업계 등 다른 산업으로 옮길 기회도 있었지만, 결국 그가 향한 곳은 다시 ‘통신’이었다.

김 사장은 “영업이 최고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며 “KT에서 영업이 최고인 회사가 만들어 질 수 있겠다, 내가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KT에 합류한 후 올해 KT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취임하기까지 김 사장의 인생 역정은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마치 끝말잇기 게임에서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것과 같았다.

▶청심환 먹고 오픈한 프로젝트…창원 ‘혁신의 눈물’까지= 통신 3사 ‘도장깨기’를 끝낸 인물 답게 업계 내의 우여곡절도 많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로 대한텔레콤에서 현 SK텔레콤 고객정보시스템의 첫 기반을 구축했던 경험을 꼽았다.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고객정보를 일일이 수기로 관리하던 기존 체계가 한계에 도래했다. 이에 대응해 가입자 이용요금을 계산하는 것부터 청구, 수납하는 과정을 자동화 한 ‘빌링 시스템(billing system)’ 구축을 주도한 것이 바로 김 사장이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는 빌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회사가 많았는데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처리할 능력이 부족했다”며 “대리점 사장님들이 찾아와 ‘못살겠다, 수작업도 한계가 있다’며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빌링 시스템 구축은 당시 우리나라의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였는데 시스템을 오픈하고 15일 동안 청심환을 먹으면서 처리 과정을 봤다”며 “15일 동안 오만가지의 일이 있었는데 결국 완성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사장의 나이 36세였다. 그는 “한참 후 대부분의 기업이 빌링 시스템을 완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지금도 그때 기억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LG텔레콤 재직 시절 LG전자 창원 공장에서 받은 ‘혁신교육’도 그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그는 “낮에는 생산라인에 직접 투입돼 생산 직원들과 같이 공정과정을 경험하고 밤에는 공정에 대한 개선책 100가지를 만든다”며 “그 중 가장 적합한 한가지 해결책을 직접 공정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개선점 10가지는 만들 수 있지만 100가지는 어렵다. 나중에는 머리가 하얘지더라”며 “이 과정을 거치면서 현장에서 직접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찾고 그 자리에서 바로 개선점을 적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만 보고 악바리로 버텼던 정신이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버팀목”이라고 덧붙였다.

▶임원만 22년 ‘영업통’경험… 후배들에게 이어 주고파=김 사장은 22년간 통신 임원을 역임하면서 ‘통신 영업’분야의 길을 새로 닦았다. 그는 “영업은 곧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사업”이라며 “이제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영업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고 교육 사업”이라며 “가장 잘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법을 찾아가는 것, 잘하는 사람과 좋은 일하는 방식을 복제해 내는 것이 곧 영업”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수많은 영업 환경을 경험하면서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고 그들로부터 성과를 내는 일이 영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결국은 인재 육성이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결국 결실을 맺는 것이 바로 인재육성”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본인의 통신 영업 경험을 담은 책을 쓰게 된 것도 이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서다. 그는 2014년 ‘통신유통 전쟁에서 승리하라!’를 집필, 본인의 통신 시장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기록했다.

김 사장은 “22년 동안 통신 업계와 관련된 임원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이트(통찰)와 성공의 사례가 쌓이게 됐다”며 “이를 그냥 묵히기에는 아까워 나름대로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후배들에게 남겨 놓고 싶은 마음에서 출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KT스카이라이프의 수장으로서 또 다른 끝말잇기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힘 빼는 삶을 사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그는 “힘 주고 사는 것이 제 자신이 잘 되기 위해 노력했던 삶이라면 힘 빼고 사는 것은 저로 인해 다른 사람이 성장하고 행복했으면 좋겟다는 뜻”이라며 “나중에 KT스카이라이프를 떠나더라도 저의 분신처럼 회사를 이끌어 가고 도전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더 많이 성장하는 회사가 됐구나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직원들이 성공 사례, 실패 사례를 경험하면서 성공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들만의 방정식이 체계화 돼 어떤 일이든 성공해 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향을 받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