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사내 중고거래 게시판에서 아이디어
반경 6㎞ 동네 주민 연결…직거래로 신뢰도 높여
지난해 11월 영국 진출…내달 해외 집중 공략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사람 간 만남과 접촉이 줄어드는 코로나 시대. 중고거래 하나로 ‘집콕족’을 밖으로 끌어낸 서비스가 있다. 동네 중고 직거래 마켓을 지향하는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이다. 올해 5월 쇼핑 앱 사용자 수 1083만명을 기록해 1위(1349만)인 쿠팡에 이어 2위에 올랐다. 5년 차 스타트업으로서는 드물게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 국민의 5분의 1이 사용하는 당근마켓의 성공 비결은 뭘까.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본사에서 만난 김용현(42) 당근마켓 공동대표는 카라 티셔츠와 반바지, 슬리퍼를 신은 소탈한 차림이었다. 그는 “오는 15일이면 당근마켓 5주년을 맞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 대표는 삼성물산 상사부문을 거쳐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기획자로 경력을 쌓아 2015년 김재현(41) 공동대표와 당근마켓을 창업했다.
당근마켓이 태어난 지는 5년 밖에 안됐지만, 그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달 기준 앱 누적 다운로드 2000만건, 월간 순 이용자 수(MAU)는 지난 1월 480만명에서 6월 890만명으로 2배 증가했다. 거래액은 2016년 46억원에서 지난해 7000억원으로 3년 만에 152배 늘었다.
김 대표는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작년 11월 서비스 운영을 시작한데 이어 오는 8월 글로벌 신규 시장 문을 두드린다. 아울러 영국 5개 도시에서만 선보이던 서비스를 심장부인 런던으로 확대한다.
―어떤 계기로 당근마켓을 창업하게 됐나
“카카오 재직 당시 김재현 공동대표를 처음 만났다. 맛집 추천 앱인 ‘카카오플레이스’를 함께 기획해 출시했는데 4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왜 실패했나 고민했는데 이용자의 방문 빈도가 낮고 체류시간이 짧더라. 그러던 중 회사 동료들이 하루종일 사내 중고거래 게시판을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봤다. ‘쿨매(쿨한 매매)’로 저렴하게 올라온 상품이 5분 만에 팔리더라.”
―사내 중고거래 게시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그렇다. 2015년 판교를 기반으로 한 ‘판교장터’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IT회사 직원들만 사용했으나 판교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판교장터를 ‘당근마켓’으로 바꾸고 서비스 지역을 전국으로 넓히자 이용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첫 창업이라고 들었다.
“삼성물산에 입사했을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다. 해외영업으로 경험을 쌓아 독립하고 싶었는데 경제학과라고 재무팀을 보내더라. 이후 소원대로 해외영업을 했지만 인터넷 발달로 종합상사가 점점 망해가는 분위기였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 싸이월드에서 도토리를 팔아 1억을 벌었다는 기사를 봤다. IT에 가야겠다 싶더라. 결국 네이버로 갔다.”
―IT로 이직하고 창업을 시도했나.
“친구들과 자동차 정보 사이트를 창업하려고 했다. 오피스텔까지 빌려 사무실을 만들었으나 개발자 친구가 일본으로 발령 나면서 무산됐다. 카카오에서는 카카오 플러스친구라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후 카카오플레이스 TF장, 게임플랫폼 팀장을 거쳤다. 계속 뭔가를 만들었지만 그 전에 창업했으면 실패했을 것 같다. 여러 경험들이 쌓여 ‘이렇게 하면 망하는구나’를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안 망하고 성공하나
“창업 초기 유능한 개발자를 데려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명의 유명한 개발자를 영입하면, 나머지 개발자들이 그 사람을 보고 따라온다. 김재현 공동 대표와 카카오에서 함께 일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소셜커머스 정보 사이트 ‘쿠폰모아’를 창업해 카카오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유명한 분이었다. 개발자임에도 기획감이 뛰어났고 사업가 마인드도 투철했다.”
―기존 중고거래 사이트와 어떤 점을 차별화했나
“제가 쓰고 싶은 중고거래 앱을 생각했다. 맘카페는 가입이 어렵고, 중고나라는 사기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 동네 주민끼리 만나서 직거래하면 가까워서 편리하고, 사기도 안 당할 것 같았다.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6㎞ 안에서 등록한 상품만 노출되도록 했다. 앱도 최대한 간편하고 직관적이게 만들었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을 통해 부적절한 정보를 걸러낸다고 들었는데
“직원 69명 중 70%가 개발자다. 창업 초기에는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직원들이 일일히 신고가 들어온 게시물을 확인해 미노출 처리를 했다. 주로 가품이나 담배·술, 전문 판매업자를 걸러냈다. 1년가량 데이터를 수집한 이후에는 AI 머신러닝을 도입했다. AI가 스스로 학습해 0.3초 만에 게시글을 판독해 조치한다. 100명의 운영 인력이 할 일을 AI가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가 급성장했다 이유가 뭔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을 꾸미고자 하는 수요가 높아진 것 같다.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팔고 돈도 버는 것이다.”
―비대면 소비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대면 서비스를 지향하는 당근 마켓이 인기를 끄는 이유
“여러 명이 모이는 서비스가 아니다보니 큰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쓰고 안전하게 일대일 거래를 한다는 신뢰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래가 급증한 상품이 있나
“자전거가 1위다. 사람들이 여행을 못 가니까 자전거를 엄청 탄다. 코로나 확산 초기에는 마스크가 1등이었다. 마스크 판매자들이 장당 최대 1만원에 판매하며 폭리를 취하던 시기였다. 당근마켓은 아예 마스크 거래가를 2500원으로 제한해 더 비싸게 올리면 기술적으로 차단되도록 조치했다.”
―해외에도 진출했다고 들었다. 반응이 어떤가
“작년 11월 영국에 첫 진출했다. 현재 맨체스터·사우스햄튼·버밍험·리버풀·셰필드에서 8만명의 월간 순 이용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앱을 좀 더 심플하게 바꾸고 당근이 캐릭터를 뺐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당근이 캐릭터를 유치하다고 생각하더라. 유아용 앱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매너온도인 36.5도도 이해를 못 했다. 영국 이용자들이 36.5도가 날씨냐고 물어보더라(웃음). 집에서 직접 체온을 재는 일이 없다 보니 생소한 것 같았다. 거래 범위도 반경 15㎞로 늘렸다. 한국과 비교해 인구 밀도가 낮고 집 간격이 떨어져 있어 거리를 넓혀야 했다.”
―왜 첫 진출로 런던이 아닌 다른 도시를 선택했나
“한국에서도 경기도 판교에 먼저 서비스를 도입했다. 런던에서 실패하면 타격이 크다. 이미 실망한 이용자를 나중에 다시 끌어오는 건 훨씬 힘들다. 그래서 처음에 사우스햄튼에서 시작해 반응을 살폈다. 여러 도시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 방식을 찾으면 점점 더 큰 도시로 이동한다. 드디어 올해 하반기에 런던에 서비스를 오픈한다.”
―라인이 지난해 베트남에서 당근마켓을 표절한 ‘겟잇’을 선보여 논란이 됐었는데
“겟잇이 저희 서비스를 똑같이 따라 했는데 얼마 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겉모습을 모방하기 쉬워도 안에 있는 세세한 기능까지 옮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겟잇을 고맙게 생각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해외 진출 계획이 없었는데, 겟잇이 나오고 나서 해외 시장을 뺏길까 3개월 내내 야근했다. 결국 위기의식을 갖고 영국에 서비스를 론칭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올해 8월에는 영국 이외 국가에 진출한다.”
―어딘가
“아직 비밀이다. 선진국이다. 중거거래가 활발한 유럽, 미국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오래 쓸 수 있는 비싼 상품을 사용하는 나라일수록 중고거래 선호도가 높다. 양질의 상품이다 보니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올해 목표가 있나
“월간 순 이용자 수 1500만명을 목표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1000만명에서 1500만명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중고 거래 앱을 만들고 싶다. 아직 한국 스타트업 중에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저희가 지향하는 가치를 해외에 전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