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성범죄 국민재판 무죄율 무려 43% 기록하기도
피해자 진술 의존하는 특성, 배심원 기피 잦은 점도 원인
2차 피해 우려 피해자들은 국민참여재판 꺼려
#. 대전지방법원 형사12부(부장 이창경)은 지난해 12월 강간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A(31)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한 모텔에서 20대 여성을 물리적으로 억압한 뒤 성관계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했다고 주장하며 범죄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직후 경찰서에 신고한 경위와 피해자를 쫓아가는 피의자의 CCTV영상 등을 근거로 간음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지켜본 배심원 중 7명 중 5명은 ‘죄가 없다’고 의견을 냈다.
2008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지난 12년 간 10.9%를 유지했다. 전체 사건 무죄율이 1~3%대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일반인의 법감정은 양형이 너무 낮다는 쪽에 가깝지만, 막상 배심원이 돼 판단 과정에 참여하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인식이 약화된다.
특히 비난 여론이 들끓기 쉬운 성범죄 사건의 경우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오히려 다른 범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년 동안 성범죄 국민재판의 평균 무죄율은 20.1%로, 평균 국민재판 무죄율보다 2배 가까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배심원 평결과 법관의 판결이 일치하지 않는 비율도 10%대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08~2019년 배심원이 내린 결론과 법관 판단이 일치하는 비율은 평균 93.7%에 달한다.
국민참여재판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검사는 “국민참여재판으로 넘어가는 성범죄 사건은 공소유지가 난해하거나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만이 증거인 사건인 경우가 많다”며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했다. 반면 홍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에서 “법관들은 강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건을 배심원들은 무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며 배심원들이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성범죄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실제 2018년 접수된 665건의 국민참여재판 중 23%인 156건이 성범죄 사건이었다. 이는 살인(44건), 강도(27건)보다도 많다. 접수된 156건 중 실제 재판으로 이어진 건은 30건으로, 이중 13건(43.3%)이 무죄판결이 났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연령이나 성별, 직업 등 배심원 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잦다. 공판업무를 맡았던 한 부장급 검사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여성배심원을 성범죄 배심원에서 배제하겠다고 하거나, 성추행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배심원 배제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배심원 풀을 검찰과 변호인이 서로에게 유리하게 짜려고 하다보니 소규모의 배심원 풀이 유죄 조건을 더 까다롭게 적용해 평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실제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1건당 평균 5.9명 꼴로 특별한 이유 없이 배심원을 기피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건당 평균 4.9명인 전체 국민참여재판 통계보다 높은 수치다.
2차 피해와 이에 따른 부담으로 인해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에서 구체적인 진술을 어려워한다는 점도 무죄평결을 유도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국민참여재판 법정에서는 재판에 반드시 필요한 판·검사와 변호사 외에 5~9명으로 구성된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피해자의 진술을 듣는다. 외부인에게 피해자의 신분뿐만 아니라 범죄현장에서 발생한 일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 피해자가 진술을 하는 데에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해 피고인 측에서 진술 신빙성을 문제삼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되레 성범죄 피해자들이 재판기피신청을 하는 사건으로 꼽힌다. 2018년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145건 중 53건이 배제됐는데, 성폭력범죄 피해자 등이 원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국민참여재판 배제사유 중 성범죄 피해자의 기피신청은 15.3%를 차지했다. 판사출신의 한 변호사는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2차 가해 우려와 성인지 감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판을 열 수 있도록 재판 개시 및 배제 기준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일반인의 법감정을 판결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아직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참여재판 시행률은 1.7%에 그쳤다. 2018년 180건에 비해 5건 감소한 175건을 기록했다. 국민참여재판 도입 당시 지적됐던 배심원단의 전문성 부족 우려는 불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의 판단과 배심원 결론이 일치하는 비율이 97%에 달하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배심원 판단을 존중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선고된 1심 결론을 항소심이 특별한 이유 없이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판례를 남겼다.
배심원 구성면에서는 남성이 50.9%, 여성이 49.1%로 균형을 이룬 편이고, 회사원과 주부가 각각 36.9%, 16.7%를 차지했다. 연령대는 50대 이상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배심원은 전과자를 제외한 만 20세 이상의 일반시민으로 구성된다. 연령 기준을 놓고 위헌 시비도 있다.
배심원 규모는 법정형을 고려해 7~9명으로 운영된다. 법원은 2배수 이상의 배심원 후보자를 무작위로 선출하는데, 등기를 받은 시민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휴가를 내고 선정기일에 참석해야 한다. 다만 배심원단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에 한계가 있어 선정부터 판결까지 주로 하루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