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통위(금융통화위원회)는 항상 적기(適期)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2월 27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긴급 인하한 지난 4일 새벽, 한은은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 8시20분 부총재보 주재로 시작된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는 40분 뒤인 9시부터 이 총재 주재 긴급간부회의로 전환돼 장시간 회의가 이어졌다. 점심 전 회의는 종료됐지만 입장 발표는 나오지 않았고 오후 3시가 넘어서까지 지체되자 한은이 이미 중대 결정을 내렸다는 등 각종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선물시장 마감 직후인 오후 3시 46분, 회의 당시 이 총재의 발언이 공개됐다. 요지는 미 연준의 결정을 통화정책에 감안할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향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보다 분명히 열어둔 메시지였지만, 발표까지 소요된 시간과 미 연준 결정 이후 세계 각국의 기민한 움직임에 비해 긴박감을 찾아보기 힘들단 지적이 나왔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연준 결정 직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한 것과도 사뭇 대조를 보였다.
이달 임시 금통위 개최 여부에 대해서도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현 시점에선 예단하기 어렵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일각에선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 6일밖에 경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 연준 결정에 즉시 동조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럴 경우 한은 스스로 실기(失期)를 자인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월 금통위에서 이 총재가 ‘적기 원칙’을 밝힌 뒤부터 실기 논란이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한은은 이날 발표문도 지난달 동결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으로 상당 부분 할애했다.
지난달 결정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생산활동 위축은 보건·안전 위험에 기인한 것이므로 금리 인하보단 선별적인 미시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난주 후반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 상황에 대한 우려가 확대된 것이 연준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여건 변화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한은이 ‘실기 프레임’에 갇힌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낳게 만든다. 한은 설명대로 한 주 전에는 코로나19의 경제여파가 이같이 확대될지 예상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 연준이 통화정책 완화에 앞장서면서 국면이 전환된 지금, 좌고우면하는 신중함보다 비난도 무릅쓰는 과단성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정부가 11조원이 넘는 역대 네 번째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집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럴 때 한은도 정부와 공조해 보다 전향적인 결정으로 위축된 경기 심리 안정에 나서야 할 때란 것이다.
실기 비판을 면하려다 진짜 적기를 놓칠 수도 있는 노릇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