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사후 섭정하다 여제 된 핫셉수트

아들 투트모스3세, 늦은 등극 후 갈등

시대 비켜간 경쟁자, 의존 후 반감 표출

[헤럴드경제, 룩소르=함영훈 기자] 핫셉수트 장제전은 동방의 빛을 온몸으로 받는 황금색 바위산 절벽아래 착상한 3층 아파트형 석조 작품이다.

빛을 받아 찬란한 비정형의 절벽 풍광과 3층짜리 직사각형으로 질서정연하게 조각한 장제전의 조화는 르느와르의 인상주의 풍경화 속에 몬드리안의 정방형 추상화를 합성한 느낌이다.

층마다 있는 넓은 테라스와 각 테라스에 새겨진 조각은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이집트 건축을 대표한다는 평이다.

핫셉수트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나이 어린 투트메스 3세를 섭정했으며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집트 최고의 신전, 룩소르 카르낙 신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오벨리스크가 핫셉수트 것이다.

[新이집트 탐방기⑧] 첫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의 여풍당당 [함영훈의 멋·맛·쉼]
고대 이집트 최고 권위의 카르낙 신전에 가장 두드러진 핫셉수트의 오벨리스크. 수렴청정하는 것으로 끝났어야 할 모후의 ‘오버’, 과잉섭정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정복왕 투트모세 3세 조차, 어머니를 파라오 호적에서 파낼지언정, 차마 최고 권위의 신전에 있는 이 오벨리스크를 부수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중전 혹은 후궁들은 자기 아들이 임금이 되어 선정을 베풀면 그것으로 대만족을 하지만, 핫셉수트는 한국의 천추태후, 청나라의 서태후 이상의 권력을 원한 듯 하다.

섭정자인데도 해외 정복전쟁을 수차례 주도하고, ‘왕 중의 왕’이나 기획할 만 한 오벨리스크와 신전 건립을 지시했으며, 스스로 파라오 호적에 등록했다.

룩소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핫셉수트 장제전은 시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이다.

투트모세 왕가를 지키기엔, 남편은 죽고, 아들은 어리니 자신이 다 해야 한다는 명분을 공표하기에 좋았다. 결국 “내가 불가피하게, 최고 통치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금빛 찬란한 절벽의 경사면에 3층 건물로 석조했고, 층마다 있는 테라스를 두고 기둥마다 신들의 조각을 새겼다.

[新이집트 탐방기⑧] 첫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의 여풍당당 [함영훈의 멋·맛·쉼]
핫셉수트 여제 장제전과 당찬 현대 여성

실내에 그려진 채색벽화는 여제가 주도한 석조건축물 답게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찌보면 현대적 감각도 느껴진다.

청소년 투트모세 3세는 먼훗날 소년임금이 된 투탕카멘과 달랐다. 투탕카멘은 참모들에게 전권을 맡겼지만, 투트모세 3세는 어머니 핫셉수트의 월권과 오버를 못마땅해 한다. 자신이 이미 왕이고, 머지 않아 친정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데, 어머니의 오버가 너무 심하다고 느끼지만 뭐라 말할 수 없으니 꾹 참는다.

해외원정, 내치 등 국방, 행정안전 등 면에서 나무랄데 없었던 여제 핫셉수트가 사망하고 투트모세 3세가 친정을 하게 되자, 아들은 당장 파라오 호적에서 모후인 핫셉수트 이름 부터 제거한다.

그리고 핫셉수트가 해외원정을 3-5회 했다면 자신은 그 3배 정도를 더 해서 이집트 영토를 사상 최대로 넓힌다. 투트모세 3세의 분노는 남존여비일까, 선대왕에 대한 단순한 경쟁심일까. 투트모세 3세의 이런 정복전쟁은 그에게 ‘고대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

[新이집트 탐방기⑧] 첫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의 여풍당당 [함영훈의 멋·맛·쉼]
왕가의 계곡 고개넘에 또다른 계곡에 있는 핫셉수트 장제전은 지구촌 여인들이 더 자신감 넘치게 노는 놀이터이다.

어머니로부터 군주의 통치방법론을 배우고 목도한 그였지만, 어미가 좀 ‘오버’했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한 모후 여제의 업적을 깡그리 제거한 행위 역시 ‘오버’라는 생각이 든다.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건너편에는 람세스 2세의 장제전 ‘라메세움’이 있다. 그 센 람세스 2세의 건축물이 핫셉수트 3층 아파트형 석조건물에 밀리는 것을 보면, 투트모세 3세의 어머니 핫셉수트는 대단한 여걸이었던 것 같다.

핫셉수트 장제전 인근에 있는 라메세움에는 클레오파트라보다 아름다웠다던 자기 아내 네페르타리 신전도 있다.

[新이집트 탐방기⑧] 첫 여성 파라오 핫셉수트의 여풍당당 [함영훈의 멋·맛·쉼]

아부심벨에서 자기 신전의 1/3 크기로 네페르타리 신전을 만든 것이 ‘오늘날에도 극소수 남아있는 남존여비의 한남스러운 모습 아니냐’라고 할지 몰라도, 그땐 왕비와 자신을 나란히 세우는 풍속 자체가 없고 남성중심이었던 점에 비춰보면, 이 정도 배려한 것에서 람세스 2세가 꽤나 애처가였음 엿볼수 있다. 라메세움의 벽화에서 운동하는 사람은 람세스2세 자신 같은데, 이례적으로 춤추는 무희를 그려 놓아 궁금증을 낳는다.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지은 섭정자, 여제 핫셉수트에게는 ▷황금의 호루스로서 신성한 모습을 지닌 여인(네테레트) ▷창조의 권능이 풍부한 여인(우세레트) ▷해마다 녹음을 일구는 여인(아우제트 렌푸트) ▷파라오로서 신성한 빛의 규칙을 상징하는 여인(마아트 카 라) ▷신성한 태양신 라의 딸로서 아몬(대기, 풍요의 신, 고대이집트 대표신)과 한몸이 된 여인(케네메트문) 등등 많은 별칭이 있다. 이는 백성의 추앙과 여제 자신의 ‘셀프 홍보’가 결합된 결과인듯 하다.

핫셉수트가 적당히 했더라면, 아들이 여제로 추앙해 주지 않았을까. 매우 적정한 선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아들에게 권력을 이어줬다면, 후세가 호평을 내렸을 것이고, 왕실 안팎 여성 지도자를 보는 시각도 보다 일찍 개선됐을텐데, 왕인 아들의 반감을 너무 키운듯 하다. ‘여제 ’칭호가 나온지는 100년도 안된다. 아들도 자기 선친과 자신 사이에 여제 한 명 더 인정하는 것이 뭐가 힘들다고, 어머니 흔적 지우기 까지 감행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新이집트 탐방기, 계속)

○‘新이집트 탐방기 글 싣는 순서’ ▶2월11일자 ①아이다 공주의 누비아가 없었다면… ②스핑크스 틀렸다, 수호신 호루스가 맞다 ③소년왕 투탕카멘 무덤방은 장난감房 ④에드푸의 반전매력, 에스나 물살 제어기술 ⑤나일강물 맛 보면, 나일로 꼭 온다 ▶2월18일자 ⑥제정일치 룩소르, 신전은 王와 神의 토크라운지 ⑦3500년전 모습 왕가의 계곡…멤논 울음 미스터리 ⑧권력 탐한 모정, 너무 나간 아들 ‘핫-투’ 갈등 ▶2월25일자 ⑨석공의 눈물 밴 미완성 오벨리스크 ⑩호텔이 된 왕궁, 시장이 된 옛호텔 ▶3월3일자 ⑪아스완-아부심벨, 곳간에서 문명 난다 ⑫필래와 콤옴보 문명 덧쓰기, 없애기 ▶3월10일자 ⑬찬란한 박물관, 개발중인 도시, 두 풍경 ⑭신비의 사막 탐험, 홍해 레저 반전매력 ⑮미사포야? 히잡이야? 문명은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