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갈등 확전조짐…러·중은 영공침범
미-중 인도·태평양 헤게모니 싸움 불똥
호르무즈 파병·방위비 분담도 난제
북핵과 별개로 치밀한 4강외교 챙겨야
한국 외교·안보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고 심지어 러시아 군용기가 6·25전쟁 이후 외국 군용기로는 처음으로 영공을 침범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한국 외교안보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미국과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제정세와 민감하게 연계된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방위비분담금 등 난제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외교·안보가 강대국 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강화하는 지정학의 귀환 시대를 맞아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24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이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상황에서 미국마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면서 지정학의 귀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이해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동북아와 그 한가운데 위치한 한국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도 단순히 한국만을 겨냥했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데 대응해 중국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해 맞서는 상황에서 빚어진 사건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에 무게를 실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중러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동반자관계’로 격상한 바 있다. 이번 중국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와 A-50 조기경보통제기 등 5대의 군용기의 KADIZ 진입과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의 독도 인근 한국 영공 무단 침범도 중러 양국이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실시한 장거리연합 초계비행훈련 과정에서 발생했다.
제프리 호넝 미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중국과 러시아가 같은 날 이런 걸 했다는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믿기 어렵다”며 “한국의 비민주적 이웃국가들이 추가적 문제로 서울의 이미 무거운 외교정책 어젠더를 이용하려는 것일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이 한일갈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틈을 이용해 이번 사건을 감행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내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갈등이 갈수록 첨예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러가 고의적으로 계산된 행보에 나섰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통신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역 동맹국을 방문하고 있는 와중에 갈등이 발생했다”며 볼턴 보좌관이 한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해 한미일 안보협력 등을 논의하는 시점에 이번 사건이 벌여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 원장은 “현재 한국이 북핵문제에 ‘올인’하다시피하고 있는데 주변국과의 양자관계와 다자관계를 포함한 4강 외교라는 또 다른 한축도 주도면밀하게 챙기지 않으면 북핵문제에서도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아울러 안보 측면에서는 결국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력하게 지켜나가는 전략적 냉철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복잡한 외교·안보환경 속에서 이 같은 해법을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일 양국은 23일(현지시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둘러싼 2라운드에 나선 마당이다. 여기에 일본은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인근 영공 침범에 대응한 한국 공군의 조치에 대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한일갈등을 경제부문에서 안보부문으로까지 확산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신대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