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분쟁이 형사고소와 고발로 이어지는 것은 소송에서 증거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채권자가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경우 외에도 소비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기업정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형사 고소, 고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민사 소송에서 증거수집 절차를 용이하게 하면 ‘민사사건의 형사화’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대안도 제시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형두(54·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서울대 법학평론에 ‘새로운 법조인 양성 체제하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의 도입 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김 부장판사는 민사소송에서 증거확보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결국 판결에 불복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디스커버리(Discovery)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거에는 증거수집 절차에 필요한 인력이 부족했지만,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이후 변호사가 급증한 만큼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위한 인적 인프라가 갖춰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디스커버리는 소송 전 증거수집을 할 수 있는 절차로, 법원이 민사소송 당사자에게 강제로 문서제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만약 문서제출 명령을 받은 당사자가 부당하게 제출을 거부하거나 서류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지면 곧바로 패소하거나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특히 미국식 디스커버리제도는 디지털 증거를 포괄적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면 기업이 소비자 소송에서 불리해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국제 소송이 늘어나고 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어느 나라 법원에서 판단을 받더라도 같은 결론이 나와야 한다”며 “미국도 처음에는 이런 제도들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5년 한국형 디스커버리인 ‘증거개시제도’ 신설 방안을 논의했으나 입법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사실심 충실화 사법제도 개선 위원회’는 서류증거 뿐만 아니라 증인과 감정 등 민사소송법상 모든 증거를 소송 전에 당사자가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대법원장에게 건의했다.
좌영길 기자/jyg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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