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계자가 제발 현장에 나와 시장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설비 제조업체 관계자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담겼다.
정부가 미래 신(新)성장동력으로 추켜세웠던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 지난해 잇단 화재사고 발생으로 인해 가동 중단은 물론, 관련 산업 전체가 기약없는 마비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잇단 화재사고에 지난 1월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석달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여기에 5월 말로 예상됐던 사고원인 조사 발표 시기는 ‘상반기 중’으로 또 늦춰지는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발표한 설명자료를 통해 “정부는 ESS산업 생태계를 조기에 복원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중에 있다”며 “재가동 방안은 물론, ESS의 안전성 제고와 업계의 수용성을 균형있게 고려한 ESS 안전대책도 화재 원인과 함께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가는 ESS 시장과 관련한 업계 관계자들의 속은 하루가 다르게 타들어가고 있다.
사고원인 규명과는 별개로 당장 ESS 생태계가 고사하는 것만은 막아달라는 간절한 호소다.
정부의 가동 중단 권고 이후 신규 ESS 설치는 물론 이전 설치된 설비의 준공검사도 올스톱 상태다.
정부가 배터리 충전량을 줄이는 방안을 도입해서라도 가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장 상황은 절박하다.
ESS업계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정부가 혹시 모를 사고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ESS 설비의 안전성 확보와 함께 관련 시장의 고사를 막아야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부는 지난주 개최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를 통해 석탄발전과 함께 원전 감축을 명시하며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율을 4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며 사실상의 올인 선언을 했다. 이같은 정부 방침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저장하고 활용하는데 필수적인 ESS산업 육성을 수반해야 실현 가능한 정책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미국의 경우 ESS 설치 때 30%의 투자세액 공제 방식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관련 법안이 최근 상하원 의회에 제출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존 태양광 연계 설치 때 지급하던 보조금을 ESS 단독설치나 풍력 등 다른 재생에너지와의 연계에도 적용받게 된다. 국가 차원의 ESS산업 육성정책에 강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습은 ‘신재생에너지’ 구호만 외치고 있는 우리와는 대비된다.
정치인들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제대로된 현실을 진단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이는 지금 ESS 업계가 정부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