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자국 기업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나와 지난해 EU, 유럽 외국인 투자 검열 틀ㆍ공공입찰 관련 상호주의 도입 독점 우려…자유로운 경쟁 보장해야 한다는 반박도 김상조, ‘글로칼리제이션’ 현상 속 보호주의 우려 표명
[헤럴드경제(브뤼셀)=정경수 기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시작된 ‘자국 기업 보호주의’가 유럽으로까지 번졌다.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독점기업의 출현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산업 정책과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쟁 정책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14일 공정위에 따르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요하네스 라이텐베르거 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장과 만나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이날 양측은 회담에서 보호주의, 산업-경쟁 정책 간 충돌 등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럽에는 ‘자국 기업 보호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월 EU경쟁당국은 세계 2위 철도차량 제조업체인 독일 지멘스와 3위 프랑스 알스톰의 철도사업 합병을 불허하면서 이 논의가 촉발됐다. 독일과 프랑스는 철도 분야에서 세계 선두인 중국의 중궈중처(CRRC)에 대항하기 위해 ‘EU 핵심기업(National Champion)’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영국의 EU 탈퇴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 경제대국의 보호주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고도 판단했다.
하지만 EU 경쟁당국의 시각은 달랐다. 같은 업계에서 활동하는 두 회사 간의 수평적 합병은 소비자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 가격 상승과 같은 부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혁신 감소로 인해 장기적인 소비자 후생도 저해될 것이라고 봤다. 중국 철도 업체들이 당분간 유럽에 진출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EU 결정을 지지하며 “EU의 강점은 다양성에 있다”며 “우승자를 인위적으로 창조하는 것보다 건강한 경쟁에서 부상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지난달 독일과 프랑스의 재무부 장관은 함께 ‘21세기 EU의 산업정책을 위한 독일-프랑스 공동선언문’를 발표했다. 공동선언문은 EU 핵심기업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결합 심사기준 등 경쟁법을 ‘기업 보호주의’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의 경쟁법을 변경해 일부 합병을 보다 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또 EU이사회가 기업결합 심사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해 EU 집행위원회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를 담았다.
이 밖에도 지난해 EU이사회는 ‘유럽 외국인 투자 검열 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민감한 기술과 핵심 인프라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고,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다. ‘공공입찰 관련 상호주의’도 도입해 한 국가가 EU회원국 기업에게 불리한 대우를 한 경우 해당국에 대한 페널티를 부여키로 했다.
김 위원장은 이 현상을 가리켜 ‘글로칼리제이션’이라고 표현했다. 글로칼리제이션은 세계화와 현지화의 합성어로 통합 속에서의 지역적 분열을 의미한다. 영국의 EU 탈퇴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EU 등 경제대국의 보호주의 환경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 제한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대표적인 예가 구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세계적에 걸쳐 독점력을 가진 새로운 기업이 출현했다. 미국은 구글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힘쓰고 있지만 유럽, 일본 등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구글을 견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중공업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김 위원장은 “EU경쟁당국의 합병 불허 결정은 경쟁법 시각으로는 일반적인 결정이었다”며 “하지만 산업정책 등 많은 측면에서 논란이 있는데,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EU 측에 보호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럽은 미국에 비해 대기업(국가 챔피언)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시장이 넓어 시장 경쟁 저해 요소가 적은 미국과 달리 유럽은 하나의 시장을 두고 있지만 개별 국가에 주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