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자투표 9건, 다중대표소송 7건 등 경영권 제한 관련 상법 개정 줄이어 -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조치 외면받는 입법 현황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20대 국회에서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해 발의된 상법 개정안은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를 무색게 한다. 개정안들이 일방적으로 경영권을 제한하는 ‘규제 강화’에 쏠려 있어서다. 다중대표소송제나 집중투표제 도입, 사외이사 기준 강화 등 기업 경영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데 반해,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장치를 도입하기 위한 개정안은 상대적으로 극히 일부다. 실제 20대 국회 개원 후 발의된 총 20건의 상법 개정안 중 경영권 제한조치를 담은 발의안이 16건에 달한다. 전체의 80% 비율이다. 상법 개정 측면에서 20대 국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이런 입법 흐름은 기업들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있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역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독립경영 훼손, 투기자본 먹잇감 노출 등 우려=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 가운데 가장 많이 다뤄지는 부분은 전자투표제 및 서면투표제 도입의 의무화다. 이 내용을 포함한 법안이 9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소액주주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된 법안이다. 하지만, 경영 현장에서는 전자투표 및 서면투표가 의무화되면 인수합병 등과 같은 중요 의사 결정 시 주주간 의견이 엇갈려 의사 결정의 최적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어 독립경영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을 포함한 법안이 7건으로 집계됐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다중대표소송 관련 상법 개정안들은 자회사 지분을 30% 또는 50%를 초과하는 모회사의 주주(단독주권 또는 지분 1% 이상)가 자회사 이사진의 불법행위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은 이해상충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자회사 주주도 있는데 모회사 주주가 소송을 건다고 하면 독립경영 취지에 반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4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해외에서 도입된 사례가 없는 제도다. 기업 경영권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다. 감사위원은 사실상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회사 기밀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존재다.

집행임원제도는 그동안 자율 선택이 가능했는데 이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계류 중이다. 현행 상법상으로는 대표이사가 임원 인사를 하지만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부분 회사 실무나 경영 경험이 없는 사외이사들이 임원 인사권을 행사하게 된다. 집행임원들이 사외이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의사 결정과 집행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게 재계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앞서 집행임원제도는 대한전선, 한온시스템, 에이블씨엔씨 등 사모펀드가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에서 주로 채택한 바 있다. 강원랜드는 2007년에 집행임원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했으나 의사결정의 비효율성 등을 이유로 올해 폐지했다

경영권 보호 법안은 고작 4건, 국제적 흐름과도 역행 지적= 이에 반해 국회에 계류 중인 경영권 보호 관련 상법 개정안은 총 4건에 불과하다. 우선 차등의결권, 신주인수권(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안정화 장치를 도입하는 법안이 3건 발의된 상태다.

주주총회 의결 요건을 4분의 1에서 5분의 1로 완화하거나 의사정족수 요건을 폐기하는 법안은 각 1건씩 계류 중이다.

또한 감사,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규정을 폐지하는 대주주 의결권 제한 폐지를 담은 법안 1건, 경영결정 후 손해를 끼쳐도 이사가 충분한 정보로 주의를 다한 경우 의무 위반에 해당되지 않도록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한 법안이 1건 발의됐다.

재계에서는 경영권 제한과 경영권 보호 법안 사이에 이처럼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하는 데 크게 낙담하고 있다. 특히 이런 국회의 상법 개정 흐름은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흐름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은 일본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 보유 시 허용하고 미국, 호주 등 영미법 국가에서는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전자투표는 인도, 대만, 터기 3개 국가에서 운영 중이고, 집중투표 의무화의 경우 러시아, 멕시코, 칠레 3개 국가에서만 도입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는 현재 도입한 국가가 없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최근 발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들에 (경제계의)우려감이 높다”며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회사 지배구조가 획일화된 형태로 수렴되도록 하는 것이 기업들이나 주주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지 다시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