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어록과 일화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변화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혜안과 이를 반드시 실행시키고자하는 뚝심의 기업가였던 최 선대회장은 단지 SK그룹의 성장뿐만 아니라 인재육성을 위해서도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최 선대회장은 줄곧 ‘큰 사업’을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울산 콤플렉스가 완공된 1991년 그는 “섬유업체 경쟁자들이 줄곧 섬유에만 매달릴 때 나는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플랜을 갖고 경쟁하는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SK의 양대 축인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 사업이 M&A를 통한 ‘운’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운으로는 큰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최 선대회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유공인수, 정보통신산업 진출 등 남들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사업다각화를 위해 10년 이상 준비한 결과”라고밝힌 바 있다.

실제 최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 당시 걸프 지분 인수를 위해 비밀리에 만든 태스크포스팀에 직접 팀장을 맡으며 사안을 진두지휘했다. 10여 년의 준비과정을 거친 한국이동통신 인수가 비용 부담으로 제동이 걸리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며 “우리는 기업을 산 것이 아니라 통신사업 진출의 기회를 산 것이다. 기회를 돈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며 임원들을 설득한 일화도 유명하다.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폐암 수술을 받고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고 최종현 회장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공=SK그룹]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폐암 수술을 받고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고 최종현 회장이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공=SK그룹]

최 선대회장은 인재양성과 사회공헌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최 선대회장은 1980년대 초반 장학퀴즈 500회 특집이 방영될 무렵 회사 임원 및 장학퀴즈 제작진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간 장학퀴즈에 투자한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배석한 임원이 “150억~160억원 가량 된다”고 답하자 최 회장은 “그럼 선경이 장학퀴즈로 번 돈이 얼마나 되냐”고 되물었다. 임원들이 답을 머뭇거리자 회장은 “7조원쯤 된다. 기업 홍보 효과가 1조~2조원쯤 되고 5조~6조원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시킨 효과”라고 설명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초기에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조건 없이 학업을 전폭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공고 때문이었다. 당시 몇몇 이사들이 “연간 4만~5만 달러는 너무 많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놓자 고 최 선대회장은 “이왕이면 최고의 장학금으로 하자. 돈 좀 아낀다고 뭘 하겠냐”며 “그리고 돈 걱정이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냐”고 답했다.

재단 장학생 출신인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말도 안되는 공고였다. 미국에 유학을 가는데, 학업 외 아무 조건 없이 엄청난 등록금과 5년 동안의 생활비까지 보장해 준다고 했다”면서 “혹시 이상한 종교단체나 중앙정보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손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