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자회견서 ‘속전’ 강조…두시간 단독회담으로 시작 CVID 시한과 방법론 두고 김정은과 치열한 신경전 불보듯
[싱가포르=문재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성패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제시한 ‘골든타임’은 단 1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오르기 앞서 가진 기자회견서 “1분 이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에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의 제로섬 협상게임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세기의 핵담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AP통신은 12일 회담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단독회담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익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두 정상은 12일 오전 통역사들만 대동한 채 약 2시간에 걸쳐 단독회담을 연 뒤 각각의 참모들과 함께 확대 회담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전날 기사에서 12일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단독회담으로 시작해 이후 측근들이 합류하는 확대 정상회담 순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1일 양측 의제 실무단은 싱가포르에서 비핵화 및 체제보장을 둘러싼 마지막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북측 실무협상단을 이끄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이날 오전 북측이 머물고 있는 숙소인 세인트 리저스 호텔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미측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성김 필리핀주재 미국대사와 만나 북미정상회담 합의안 조정을 위한 막판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기사 2·3·4면 트럼프 행정부가 6ㆍ12 북미정상회담이 제시한 성공 기준점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의 명문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앞서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에 CVID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북한정권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체제보장을 대가로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서 구체적인 시한과 방법론이 담긴 합의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관철해왔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단은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판문점 통일각에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선후관계와 구체적 방법론과 시한을 둘러싼 협상을 벌였지만, CVID 명문화 및 체제보장 선후관계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단순 CVID 명문화가 아닌 단계적인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조치를 통한 CVID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먼저 약속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굴복으로 간주해왔다. 미국도 북한이 핵으로 협박하고 있는 상태에서 먼저 약속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굴복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역대 가장 ‘권위적’ 지도자 꼽히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비핵화 타결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워싱턴 내 만연한 상태다.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와 북한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보장’(CVIG)의 본질적인 성격이 다르다는 것도 합의안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핵 협상에서 북한이 이행해야 할 조치들은 핵시설 폐쇄와 핵물질 폐기 같은 물리적 행동인 반면, 미국이 취할 ‘종전선언’이나 제재완화는 제도적인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물리적인 행동을 바로 이행하면 되지만, 미국의 보상조치는 ‘관계정상화’로 가는 절차적 성격이 강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격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자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회담 초반에 CVID 명문화를 요구하고 구체적인 비핵화와 체제보장 선후관계를 두고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김 위원장을 ‘보통국가의 정상’처럼 예우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도 체제보장에 대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CVID와 CVIG의 조속한 이행을 명시한 합의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당 간부들에게 강성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잘 되지 않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상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출신 탈북자는 아사히 신문에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핵폐기 수용의 불가피성을 당과 주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미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 및 합의안을 발표하고자 하는 의지를 판문점 실무단을 통해 서로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원료 생산 기지인 영변 핵시설을 감시할 사찰단을 1∼2개월 이내에 복귀시키는 방안을 정상회담 합의문에 넣는 걸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핵 사찰단의 복귀 외에도 북한 핵무기의 조속한 국외반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제재 완화와 대북 경제지원 및 미국의 대북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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