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장장 105일에 걸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활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협의회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통신비 인하’를 논의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결국 초라한 결과만 내놓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협의체 활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외부 시선은 곱지 않다. 예견된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는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진다.

완전자급제 도입은 단순히 ‘자급제 활성화’ 선에서 그쳤다.

보편요금제는 아예 합의점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8차 회의에서는 논의에 참여 중이던 시민단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말 그대로 ‘파행’이다.

기초노령연금 수급자(어르신) 통신비 추가 인하에 합의하긴 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로 보기엔 어렵다. 당초 이해당사자간 이견도 크게 없었던 부분인 만큼,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기엔 초라하다.

결국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무리한 공약 추진을 밀어붙이다가 사회적 논의기구에 뒤처리를 떠넘겼다는 비판이 거세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 산업과 통신요금 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내던진 ‘기본료 폐지’를 추진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과속방지턱에 걸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국회다.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는 그간의 논의 내용을 정리해 다음달 국회에 제출, 입법 과정에 참고가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이미 단말기 자급제를 비롯해 보편요금제 도입 등 대부분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만큼, 통신비 인하의 마지막 격전지는 국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통신비 인하 논의가 공전할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이다.

사실 통신비 인하 같은 쟁점이 큰 사안은 상임위원회 차원에서 법안을 논의하기조차 쉽지 않다. 2014년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자마자 개정안이 봇물 터졌지만, 19대 국회가 끝나고 20대 국회 전반기가 지나도록 제대로 개정안이 처리된 적은 없다.

지원금 상한제를 조기 폐지하겠다는 각종 공약, 제조사의 자료제출 의무를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결국 이들 조항의 일몰기한이 도래할 때까지 공염불에 그쳤다.

여기에 오는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만큼, 제대로 된 법안 논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당에서는 이에 ‘올인’ 하느라 상임위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해진다. 2월 임시국회는 ‘김영철 방남’ 여파 등 정치 이슈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일도 허다하다. 단통법 역시 부처간 논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내용이 수정되며 원래 취지와는 달리 통신시장 ‘악법’의 대명사가 됐다.

통신비 인하는 국민들 피부에 닿는 이슈다. 자연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거르지 않고 통신비 인하 공약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통신비를 내리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출 수 있으면 당연히 낮춰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쳐 통신비를 내리겠다는 것인지,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고민 없이 외친 ‘통신비 인하’는 국민에게 더 큰 실망감만 줄 뿐이다. 심지어 국정기획위에서 정부로, 정부에서 다시 국회로 ‘통신비 인하’의 공이 넘어가는 작금의 사태는 마치 ‘폭탄 돌리기’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