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에 아동학대, 7개월 아기 안고 투신도 -법원 “심신미약·형벌보다 더 큰 고통 참작” -산후우울증 치료 증가세지만 여전히 ‘미비’
[헤럴드경제=이유정 기자]지난해 7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성 A(32)씨가 생후 7개월 된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 8층과 9층 사이의 비상계단 난간에서였다. 앞쪽으로 맨 아기 띠에 안겼던 딸은 현장에서 숨졌다. A씨는 크게 다쳤으나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그는 줄곧 산후우울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부장 홍순욱)는 지난달 21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전에도 아이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가 계속됐던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산후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의 범죄가 최근 잇따라 재판정에 올라 주목받고 있다. 심신미약 상태의 정도, 범죄의 심각성 등에 따라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하지만 중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나온다.
대구고법은 지난 2월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들이 울며 보채자 3층 창문 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20대 여성 B(29)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B씨는 평소 심한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심신미약 상태서 범행에 이르렀고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해 어떤 형벌보다 무거울 것”이라고 판시했다.
산후우울증이란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 시작되는 불안감, 불면, 체중 변화 등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 변화가 큰 상태를 말한다. 산모의 85% 정도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산모의 10~20%는 이런 우울 상태가 지속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세 쌍둥이 엄마 C(30) 씨는 9개월 된 아이들을 상습 폭행하고 둘째 아이에게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의 장난감을 던져 숨지게 했다. 법원은 C 씨가 산후우울증을 앓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전고법은 “C씨가 학대행위를 명확히 인식했으며, 산후우울증을 앓았지만 전반적인 현실 판단력의 장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 3월 이같은 판결을 확정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산모들이 산후우울증 상담이나 진단을 받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이 있는 여성 중 9.8%는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8년~2015년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산모의 비율은 평균 1.6%에 불과했다.
현행법상 임산부의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은 보건소에 비치된 자가검사지를 통해 우울증 여부를 판단 받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산후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산모 수는 2013년 219명, 2014년 261명, 2015년 294명, 2016년 298명으로 매년 증가했지만 지난해 신생아 수가 40만 6243명인데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치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12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임산부가 산전·산후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각종 검사와 치료 등을 실시하고 전문적인 치료상담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른바 ‘독박 육아’와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신보건적 치료도 충분한 대안이 될 순 없고 육아 스트레스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산후 우울증 환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할 수 있는 지역 거점 심리지원센터 등을 많이 마련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