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장필수 기자] “아무리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도 자기가 먼저 시작하는 걸 보니 세긴 세네요.”
지난달 4일 한광옥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첫 만남에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던진 첫 마디였다. 한 비서실장이 “많은 도움을 요청드린다”며 협조를 구했지만, 예방(禮訪)임에도 불구 먼저 마이크를 잡은 게 박 원내대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여의도에서의 예방은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린다’는 뜻에 정치적 의미가 더해진다. 겉으로 보기엔 예의를 차리고 덕담을 건네면서도 미묘한 신경전 속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눈빛은 잠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향후 협상 파트너로서 협조가 절실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기선 제압’이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 상대방에 따라 예방 전략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보통 인사말을 건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방 온 상대방을 대차게 거절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한다.
지난달 7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가 한 비서실장을 국회로 보냈지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만남을 위한 만남은 의미가 없다”며 아예 국회를 비웠다. ‘영수회담’이라는 청와대의 국면전환용 술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셈이다.
문전박대가 강력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자, 최근 들어 이를 역이용하는 사례도 생겼다. 정우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선출된 직후 이틀 연속 야 3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집권 여당 원내대표의 예방이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동시에 ‘비련의 주인공’ 이미지를 부각시킴으로써 지지층 재결집을 노리는 행보였다.
야당 또한 정 원내대표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각 당 지도부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 조율도 없이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연출한 정 원내대표를 힐난했다. 추 대표는 “기별조차 없다가 카메라 앞에서 ‘문전박대다’ 외치니 ‘문전박대 scene’ 찍으러 오셨나”라고 말했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쯤 되면 예방이 아니라 시위”라고 비꼬았다.
test1025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