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카라보보주  푸에르토 카벨로에 있는 엘 팔리토 정유소의 전경 [AFP]
베네수엘라 카라보보주 푸에르토 카벨로에 있는 엘 팔리토 정유소의 전경 [AFP]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민간 석유기업을 ‘끼고’ 베네수엘라 유전을 개발해 이익 일부를 분배받겠다는 트럼프식 베네수엘라 석유사업이 돛을 올리기 전부터 현실성 논란을 빚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택한 기업의 개발 역량이 워낙 적은 데다, 개발 대상인 유전의 경제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벌써 반대 여론이 거센데, 100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정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밝힌 내용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석유 기업 노스 아메리칸 블루 에너지 파트너스(NABEP)는 향후 100년간 국내 유전 17곳을 개발하고, 미국 정부는 이 기업의 지분 35%를 확보하게 된다. 미국은 NABEP가 생산하는 석유의 20%를 원가에 “우선적으로 접근(preferential access)”할 수 있는 권리도 갖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확보한 석유로 최근 급감한 미국의 전략비축유를 다시 채워 넣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원대한 계획은 첫 삽을 뜨기 전부터 비판받고 있다. 포부처럼 막대한 석유 생산을 하기에는 계약 곳곳에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NABEP의 개발 역량이 장장 1000억달러 규모라는 이 사업을 소화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국유화해, 국영기업인 PDVSA가 핵심 정유 사업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이에 비하면 NABEP는 소형 정유사업자로 하루 생산량이 20만배럴 상당, 연간 원유 생산 능력은 역 7300만배럴 수준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NABEP는 미국 전체 확인 매장량인 460억배럴보다 많은 650억배럴 규모의 매장량을 확보하게 된다. NABEP는 이 유전들을 바탕으로 향후 수년 내 일일 생산량을 100만배럴까지, 최종적으로는 160만배럴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왼쪽)과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궁에서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내 사업 확대를 위한 협정에 서명하고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미국의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왼쪽)과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미라플로레스 궁에서 셰브론의 베네수엘라 내 사업 확대를 위한 협정에 서명하고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하루 생산량을 7.5배나 늘린다는 것은 단순히 밸브를 더 여는 수준이 아니다. 국가 인프라 재건 수준의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런 프로젝트를 소규모 민영 기업 한 곳에 맡긴다는 것에 대해 석유 회사 경영진과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한 석유회사 임원은 폴리티코에 “능력도 없고 신뢰도 없는 회사가 감당하기에 이 일은 너무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자 알레한드로 수크레는 “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더 큰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며 “650억배럴의 매장량을 단 한 회사에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NABEP 외에 다른 회사들이 해당 프로젝트를 나눠 맡아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계약이 체결된 17개 유전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번 합의에 포함된 유전의 절반가량은 초중질유가 나오는 곳으로, 해안에서 수백km 떨어진 오리노코 벨트에 있다. 시추한 후 바로 해상 수송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PDVSA의 전 임원이자 석유 컨설턴트인 에바난 로메로는 해당 유전 중 상당수가 22세기 전까지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됐던 것들이라 전했다. 그는 “이번 거래에 포함된 베네수엘라 동부 마라카이보 호수 주변 유전은 대부분 고갈됐고, 대규모 투자 없이는 생산을 확대할 전력 및 파이프라인 인프라가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석유업계 임원은 “해당 매장량을 개발하려면 최소 10년, 수천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대 기간 등 거래 조건에 대한 설명에도 의문이 가중되고 있다.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에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해당 유전에 대한 100년 동안의 접근 권한을 제공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은 임대 기간이 25년이라고 발표했다.

유전 임대 기간을 100년으로 인정한다 해도, 임시 정권이 체결한 계약을 차기 정권이 계속 인정할지는 확실치 않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정권의 철권통치를 지지했던 강경파부터 수십년간 정치적 핍박을 받아왔던 야권 인사들까지 대부분 이번 계약을 반대했다. 강경파는 국가에 가장 중요한 기반 산업을 미국에 넘겨준다고, 야권 인사들은 임시 정부는 정당성이 없어 이 같은 큰 국가 계약을 체결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향후 대선이 치러져서 정권이 바뀌면 이번 계약이 그대로 이어질지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디브리핑(Debriefing:임무수행 보고):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핫한’ 글로벌 이슈의 숨은 이야기를 ‘속시원히’ 정리해드립니다. 디브리핑은 독자와 소통을 추구합니다. 궁금한 내용 댓글로 남겨주세요!


kate01@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