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팀장 사칭·위조 문서 동원

피해자 현장 가보니 다른 업체가 철거

항소심서도 징역형 집행유예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일대에서 철거가 진행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일대에서 철거가 진행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연합]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재개발 사업의 철거 공사를 맡겨주겠다며 개발업체를 속여 5억원을 받아 챙긴 일당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법무팀장으로 속여 말하고 위조문서까지 내밀며 실제 철거 공사권을 확보한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인천원외재판부 형사1부 정승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66) 씨와 B(66) 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범행에 가담한 브로커 C(67) 씨와 D(61) 씨 역시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은 지난 2023년 10월에 발생했다. 피의자들은 주택 재개발 사업의 철거 공사를 맡길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개발업체 대표들로부터 공사 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가 범행의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은 ‘가짜 신분’과 위조 서류였다. 그는 재개발 사업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는 시행사와 임의로 공동사업 계약을 맺은 뒤 자금력을 갖춘 기관의 법무팀장인 것처럼 명함을 만들었다. 법무사까지 사칭했다.

재개발 사업 관련 업무협약서와 시공사 추인 확약서 등도 위조했다. 이를 토대로 자신에게 철거 공사권이 있는 것처럼 꾸민 뒤 B씨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B씨는 피해 업체에 위조 서류를 보여주면서 “조합장이 구속됐고 업체에 뒷돈 10억원을 줘 철거 공사 계약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취지로 속였다. 브로커 C씨와 D씨는 피해자들을 이들에게 연결해 주고 1억1000여만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사기 행각은 피해자들이 계약을 맺은 뒤 직접 현장을 찾으면서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약속과 달리 현장에서는 이미 다른 업체가 철거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A씨 등은 “현재 공사 중인 업체가 곧 철수한다”, “시청에서 정식 철거 허가가 나왔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철거 공사를 맡길 것처럼 가장해 5억원을 속여 뺏은 범행 내용에 비춰 죄질이 나쁘고 죄책이 무겁다”며 특히 A씨와 B씨가 법무팀장으로 속이고 허위 문서를 제시하는 등 범행을 주도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와 B씨가 피해금 변제를 약속하고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등 피해자들과 합의했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1심 선고 이후 형량을 달리 정할 만한 사정 변경이 없다며 피고인들과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jookapook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