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먼 퍼티타 주이탈리아 美대사, 6000억원 요트타고 ‘해안 외교’
순자산 15조원…휴스턴 로키츠·카지노 소유한 억만장자
경호 제외 비용 전액 자비 부담…“과도한 부 과시” 비판도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시칠리아 이민자의 증손자이자 순자산 111억달러(약 15조2000억원)를 보유한 틸먼 퍼티타(69)는 역대 미국 대사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부호다. 현재 주이탈리아 미국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초호화 요트를 앞세운 이른바 ‘요트 외교’로 이탈리아 정가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관계가 삐걱대는 사이, 텍사스 출신 억만장자 퍼티타 대사는 자신의 초대형 요트 ‘보드워크’호를 타고 나폴리만과 베네치아, 남부 항구도시 바리 등을 오가며 이탈리아 정계 인사들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퍼티타는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 상당의 보드워크호를 타고 두 달 반에 걸친 ‘해안 외교 투어’를 진행 중이다. 티크 목재 갑판을 갖춘 이 요트에서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스포츠계 인사들이 중앙정부 관료와 주지사, 시장 등과 어울린다.
요트에는 여러 개의 바를 비롯해 헬리콥터 이착륙장 2곳, 수영장 2곳, 온수 욕조 4개, 스쿠버룸과 스파, 헬스장까지 마련돼 있다. 국가가 부담하는 경호 비용을 제외한 모든 비용은 퍼티타 대사의 개인 자금으로 충당된다.
포브스 기준 세계 312위 부호인 퍼티타에게 이 정도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니다. 그는 미 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 구단주이자 버바 검프 슈림프, 골든너깃 호텔&카지노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막대한 개인 재산을 외교 활동에 적극 활용하면서 ‘트럼프 시대 외교’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연도 25년 넘게 이어졌다. 1999년 트럼프 플라자 호텔에 레인포레스트 카페를 열면서 관계를 맺었고 이후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오랫동안 주이탈리아 미국대사 자리를 원했던 그는 지난해 5월 대사로 부임했다. 퍼티타 대사는 자신의 사업 인맥을 외교의 무기로 내세운다. 정치·경제·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주요 인사에게 직접 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을 기존 외교관과 차별화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인 부호가 미국대사로 임명되는 것 자체는 새로운 일은 아니다. 특히 서유럽에서는 막대한 접대비를 자비로 충당할 수 있는 부유한 정치 후원자들이 주요 대사직을 맡은 전례가 적지 않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미국대사 지명자의 90%가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정치적 임명자로, 최근 다른 행정부와 비교해도 유독 높은 비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돈인 찰스 쿠슈너를 비롯해 은행가 워런 스티븐스, 헤어케어 기업가 레안드로 리주토 주니어 등 억만장자 대사들도 잇따라 임명됐다.
이들 가운데서도 퍼티타는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바리에서 열린 요트 파티를 앞두고 퍼티타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위세’를 가진 대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들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큰 배를 타고 직접 도시를 찾아와 예우를 갖추고 우리 집에 초대한다고 받아들인다는 말을 듣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의 이른바 ‘러브보트 외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비판론자들은 막대한 개인 재산과 공적인 외교 임무의 경계가 지나치게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조지타운대에서 외교를 연구하는 바버라 보딘 전 주예멘 미국대사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대사들이 개인 재산을 관저를 개선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부를 과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퍼티타의 호화로운 생활방식은 부임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해 로마에 부임한 뒤 사비 200만달러를 들여 미국대사 관저인 ‘빌라 타베르나’를 개조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전에 소유하던 초대형 요트에서 3주간 머물며 헬리콥터를 타고 출퇴근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새로 마련한 보드워크호가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퍼티타는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로마 관저의 추가 보수공사를 피해 진행하는 이번 해안 투어에 개인적으로 약 100만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퍼티타가 이처럼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흔들리는 미국과 이탈리아의 관계도 있다.
이탈리아는 유럽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미국에 우호적인 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한때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멜로니 총리 사이에는 최근 공개적인 균열이 생겼다. 멜로니 총리가 이란전 지원을 거부하고 해당 전쟁이 국제법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비판하면서 양측 관계가 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퍼티타는 자신의 개인적 인맥과 재산을 활용해 이탈리아 정치권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퍼티타는 사람들을 요트로 불러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방식이 미국과 이탈리아와의 관계 강화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다만 구찌와 베르사체로 대표되는 ‘화려한 사치’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도 퍼티타식 외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부를 드러내는 데 상대적으로 관대한 문화가 있지만, 이탈리아 상류층 사이에서도 미국식 과시적 소비를 지나치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좌파 진영 일부 인사들은 퍼티타의 요트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교류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녹색좌파연합 공동대표인 안젤로 보넬리 하원의원은 퍼티타의 투어에 동원된 경찰과 헬리콥터, 선박 등 경호 비용을 공개하라며 의회 조사를 요구했다. 보넬리 의원은 관련 비용이 300만~400만유로(약 48억~6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면서 “이런 식의 부 과시는 솔직히 역겹다”며 “유럽에서는, 적어도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mokiya@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