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 첫 사랑 이야기 ‘서리꽃’
천민자본주의속 ‘사랑의 영원성’ 담아
3년만 장편 출간 “장편, 이번이 마지막”
내년 1월 회혼식…“아내와 여행다닐것”
“슬픈 사랑의 이야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주로 역사와 사회를 다룬 대하소설을 써 온 조정래(83) 작가가 첫 번째 ‘사랑’ 이야기를 들고 3년 만에 돌아왔다. 24일 출간한 신작 ‘서리꽃’(해냄출판사)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려는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 노래다.
조정래 작가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리꽃’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강’을 쓰고 나서 어느 독자가 ‘왜 사랑 소설을 안 쓰냐’고 질문했다”면서 “그 후 20년 가까이 소설을 쓰며 이제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랑 이야기를 써 볼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등단하면서 스스로 ‘형식에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고 내용에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했다”며 “이번 소설도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뼈대가 튼튼하고 주제가 확실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서리꽃’은 사랑 이야기지만 천민자본주의 같은 사회적 문제와 밀착돼 있다. 작가는 “자본이 무한한 탐욕을 저지르고, 국가 권력과 야합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삶을 몰락하게 만드는가, 영원한 사랑이 어떻게 파괴되고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재창조해 낼 수 있는가 쓰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죽음을 초월해 영원한 세계로 이어지는 생명력 있는 사랑은 남자 주인공 ‘이재이’로 표상된다. 집안이 몰락한 여자 주인공 ‘윤소인’의 고단한 삶을 끌어안기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부와 특권을 포기한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지만, 비현실성이 영원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작가는 “사랑은 인간이 삶을 존속해 나가는 데 희망과 같은 것이다. 인간에게 희망이 없다면 어떤 힘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나”고 반문하며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유태인이 죽어갔는데, 한 영감님이 세 아들과 행복하게 살았던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믿음으로 살아남았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수행하는 힘이므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시대에도 사랑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랑을 창조하게 돼 있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험악해도 이 소설처럼 사랑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사랑의 영원성에 대한 확신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라고 했다.
작가는 현실에서도 ‘사랑꾼’의 면모를 보였다. 이번 소설에는 60년간 해로한 아내 김초혜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그는 “내년 1월에 결혼 61주년으로 회혼식을 맞는다. 환갑은 많지만 회혼식은 굉장히 어렵다. 다행히 별로 죄지은 것 없이 살아서 하늘이 허락했다”며 “김초혜한테 평생 꺾이며 사는 미덕을 발휘해 집안이 평안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1970년에 등단해 56년간 67권에 달하는 책을 써 온 조정래 작가는 여전히 겸손하고 부지런하다. 그는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것은 노력”이라며 “작가로서 내가 가진 재능을 절대 믿은 적이 없다. 타고난 조그만 재능이 있다면 갈고 닦아 계발할 수 있는 것은 노력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글쓰기에만 몰두했다”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 노력 없는 재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컴퓨터가 아니라 원고지에 자필로 글을 쓰는 것 역시 손으로 한 자 한 자 눌러 쓸 때 영혼이 나오고, 앞 문장과 뒷 문장 사이에 긴장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장편소설은 아마도 ‘서리꽃’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했다. 지금도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소설 앞에서 겸손해지고 싶고, 몸에 대한 자유를 조금 허락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앞으로 아내와 가까운 곳을 여행하고 싶다. 장편을 많이 쓰니 단편은 소홀했는데, 앞으로 단편을 쓰고 수상록도 쓰고 싶다”며 “자유롭게 되면 붓글씨도 시작하려 한다. 등단 61년째 회문식을 맞아 독자 610명에게 붓글씨를 선물하려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태백산맥문학관 벽면에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탐구, 발견이고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 문학의 흔적이 남겨지길 바라면서 56년의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글을 쓸지 모르겠지만, 펜을 놓는 그날까지 이 정신을 견고하게 가져가고자 합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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