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AI 수석이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국가AI전략위원회 부위원장도 같은 길을 택했다. 후임은 아직 없다. 이로 인해 업계 전반에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는 진짜 불안은 수장의 공백 자체가 아니다. 그 자리가 비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AI 국가 전략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그 물음 앞에 역사의 기시감이 밀려온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 조정은 조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589년 쓰시마 도주가 진상한 조총은 군기시 창고에 조용히 사장됐다. 대신 조정이 몰두한 것은 신기전과 천자총통, 즉 익숙한 화약무기 체계의 개량이었다. 신기전은 막대한 화약을 소모하고도 명중률이 낮았고, 천자총통은 화약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실전성이 떨어졌다. 판을 바꿀 무기가 눈앞에 있었지만 조선의 리더십은 익숙한 무기를 개량하는 데 국가적 에너지를 쏟았다. 3년 뒤 그 조총이 조선을 유린했다.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자 AI 시대의 핵심 기반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잘 만든다는 것과 AI 강국이 된다는 것은 다르다. AI 경쟁력은 반도체뿐 아니라 데이터,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산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더구나 하드웨어의 우위는 영원하지 않다. 기술이 표준화하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발전할수록 하드웨어가 만들어내는 상대적 경쟁력은 필연적으로 약화한다. 최근 중국의 딥시크와 스타트업 문샷AI는 미국의 강도 높은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속에서도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의 극단적 효율화를 통해 미국 선두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선보였다. 오늘의 하드웨어 기술 우위가 내일의 AI 패권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경고다.

최근 정부는 반도체 투자를 전면에 내세운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후 AI 국가 전략의 무게중심은 반도체 투자로 기울어지는 모습이다. 그러나 반도체만큼이나 중요한 AI의 핵심축은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정보보호법과 저작권법 등 촘촘한 규제 장벽 앞에서 스타트업들은 데이터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부처 이기주의로 공공데이터는 칸막이에 갇혀 흐르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역시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와 상생 없는 착취 구조 속에서 산업 생태계가 성장하지 못했다. 이 같은 구조를 방치한 나라가 AI 시대에 갑자기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증시는 미래를 가장 먼저 가격에 반영하는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다.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자금이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은 대한민국 AI 전략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은 충격에도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모습은 특정 축에 지나치게 의존한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국가 전략도 다르지 않다. 하드웨어에만 올인하는 거버넌스로는 미래 AI 기술패권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조선이 조총을 외면한 채 천자총통을 개량하다 참화를 맞았듯, 익숙한 하드웨어 강국의 문법만으로 AI 패권을 설계한다면 그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AI 임진왜란의 패배는 기술의 열세가 아니라 시대를 읽지 못한 정책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정권은 늘 단기 성과에 매몰돼 우리가 이미 잘하고 있는 것에 투자한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다음 시대를 준비한 나라의 편이었다.

이영 제4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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