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면 적은 숫자로도 많은 수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은 손자의 상상을 엄청나게 뛰어넘은 대첩이었다.
그러나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위태하다. 전략전술 없이 산이든 강이든 똑같이 나서기 때문인데 더욱이 적이 나를 안다면 결과는 백전 필패다. 별 능력도 없으면서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라 200여척의 배를 칠천도 앞바다에 수장시켜 나라를 위태롭게 한 원균의 칠천량 해전이 바로 그 경우다.
똑같은 일본군을 같은 바다에서 상대했는데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었을까. 리더의 지략과 용맹,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실 적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도 다 이길 수는 없다. 기본적인 전력이나 규모에서 큰 차이가 나면 제아무리 뛰어난 지장이고 맹장이라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한 번 실패는 싸움에서 흔히 있는 일’로 치부하지만 천지 분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때를 놓치고 용병에 실패한 터에 병사들의 사기까지 떨어뜨린 원균은 예외다.
많은 국민의 분노와 원망이 월드컵 축구에 쏟아지고 있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황금세대가 포진했고 대진운도 역대 최고였는데 어찌 예선탈락인가였다. 진 것도 진 것이지만 지는 과정이 이해 불가여서 부아가 치솟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홍명보 감독에게 물었다. 0대1로 지고 있는데도 왜 총공세를 펴지 않았는지를. 아이의 말대로 감독은 지고 있음에도 앞뒤가 똑같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했던 홍명보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사령탑이 되자 ‘한국팀의 최대 리스크는 감독’이라는 말이 떠돌더니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공은 둥글고 발은 부정확하다. 축구는 그래서 이변의 스포츠다. 우리가 다른 팀을 발판으로 삼고 환호했던 적이 있었듯 이번엔 우리가 희생양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비상조치를 하지 않은 건 말이 안 된다.
2002년 월드컵 한국 대 이탈리아 16강전. 전반을 1대0으로 리드한 이탈리아는 후반 잠그기에 들어갔다. 반면 히딩크 감독은 총공세령을 내리며 황선홍, 이천수, 차두리를 연이어 투입했다. 수비 핵심인 홍명보까지 뺄 정도였다. 유례없는 공격수 5명의 총력전. 히딩크호는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의 헤더골로 끝내 경기를 뒤집었다. 그건 감독과 선수가 함께 빚어낸 승리의 전술이었다.
팬들이 원했던 건 바로 그런 장면이다. 졌다고 무조건 탓하는 게 아니다.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싸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바로 알아본다. 감독이 매번 같은 그림만 그리고 선봉장을 조림돌림 하듯 내팽개쳐 팀 전체 사기를 떨어뜨리며 경기를 망쳤기에 울화병들에 걸린 것이다. 천하에 둘도 없는 명장이라도 지휘관이 억누르고 견제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러면 잘 싸울 수 없다.
구슬이 서말이면 뭐 하나. 꿰질 못하는데. 오래전 대학가에 시대를 반영하는 자조적인 노래가 유행했다. 이런저런 집단을 갖다 붙이며 풍자했는데 후렴은 ‘우두머리가 돌대가리면 아래도 돌대가리’였다. 딱히 이번 월드컵호 뿐만 아니다. 요즘도 우리 사회 곳곳에 떠도는 풍경이다.
이영만 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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