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보기술(IT) 업체인 화웨이가 첨단 반도체 공정 구현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의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없이 독자 기술로 2031년까지 1.4나노미터(nm=10억분의 1m) 반도체 미세 공정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1.4나노 공정은 TSMC가 2028년, 삼성전자가 2029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삼성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의 경우 현재 4나노가 성숙 공정이며, 2나노는 아직 수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화웨이 공표대로 2031년에 1.4나노를 달성하면 삼성과의 격차가 3년내로 바짝 좁혀진다.

지난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6년 국제 회로 및 시스템 학술대회(IEEE ISCAS)’ 기조연설에 나선 허팅보 화웨이 사장은 “우리 방식은 반도체 성능 발전에서 완전히 다른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허 사장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황금 법칙으로 통하는 ‘무어의 법칙’ 대신 새로운 개념의 ‘타우의 법칙’을 제시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성능은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가 핵심이다. 한정된 칩 안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을수록 성능이 좋아진다는 개념이다.

중국은 미국 제재 탓에 미세 회로를 찍어내는 ASML의 장비를 수입하지 못한다. 타우의 법칙의 핵심인 ‘로직 폴딩’은 종이를 접듯 회로를 2개로 쌓아 올려 배선 길이를 줄인다. 로직 폴딩을 사용하면 회로 길이가 짧아지며 신호 이동 시간이 줄게 된다. 이에 따라 초미세 공정을 사용하지 않아도 2나노, 1나노대 공정과 같은 성능이 구현된다는 게 화웨이측 설명이다. 지난 6년간 타우의 법칙에 근거해 반도체 381종을 설계·양산해왔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전면적인 수출 규제로 반도체·AI 등 첨단 사업 발전에 제약이 생긴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 이른바 ‘환도초차(換道超車·차로 변경 추월)’의 성장 방식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기존 법칙에 따라 선두 주자를 좇는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자를 추격하고 따돌리겠다는 것이다. 내연기관차의 후진성을 전기차, 자율주행차로 극복한 사례를 반도체에서도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화웨이 뿐만 아니라 CXMT(창신메모리)와 YMTC (양쯔메모리)도 D램, 낸드플래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분야에서 K-반도체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K-반도체와의 격차를 좁히며 무섭게 따라붙는 중국에 대응하려면 초격차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AI특수로 만들어진 횡재에 취해 지금 당장의 파티를 즐기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예상 총액 약 31조원은 엔비디아가 지난해 연구·개발과 기업 인수에 쓴 돈의 1.5배 수준이다. K-반도체의 내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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