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면 청와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반찬은 ‘반찬’이고 대박은 ‘대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땐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 한식의 세계화에 나섰으나 첫 난제가 우리 음식의 영어 작명이었다. 반찬은 사이드 디시, 김밥은 코리아 스시, 잡채는 코리안 누들 샐러드 정도였지만 도대체 어감이 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며 통일이 우리의 염원임을 밝혔다. 처음 접한 ‘대박’이라는 말에 외신들이 다양하게 반응하자, 청와대는 ‘보난자’나 ‘잭팟’을 권유했으나 느낌이 달랐다. 그건 ‘절절한 바람’이 아니라 ‘횡재성 일확천금’에 가까웠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십수 년 전이다. 영어엔 없는 말이니 고심은 할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고 눈치를 본 탓이었다. 우리 영향력이 커진 덕이지만 지금은 그들 모두 잡채, 먹방, 떡뽁이, 달고나, 불닭, 치맥, 갈비, 만화, 동치미, 오빠, 언니를 우리와 똑같이 적고 말하고 있다. 원조를 인정한 덕분이지만 원조로 둔갑한 것도 있다. 파이팅, 아파트는 틀림없는 영어. 굳이 말하면 한국식 영어인 콩글리시인데 그들은 그게 한국말이라며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 표기도 다르지 않다. 처음 외국 문물을 접했을 때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이 ‘영어권에선 성이 뒤로 간다’며 핏대를 올리며 가르쳤다. 홍길동이 아니라 ‘길동 홍’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만, 문화가 다른 데 이름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축구선수 손흥민도 처음 나갔을 땐 ‘흥민 손’이었다. 하지만 유명해지고 한국에서 손흥민이라고 부르자 영국도, 미국도 모두 ‘손흥민’이라고 중계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은 성이 앞으로 나온다는 설명까지 한다.

그러나 이정후는 ‘정후 리’다. 미국 가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줄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 한 탓이지만 또 하나 이상한 건 ‘이’가 아니라 ‘리’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리승만’을 고집한 영향이 없지 않은 듯 한데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든 이씨는 외국에 나가면 모두 리씨가 된다. ‘리’는 李의 중국발음이다. 한국 발음은 분명히 ‘이’다. 자칫 중국사람과 헷갈릴 수도 있다.

성명 뒤집어 부르기는 영어권 사람들의 강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 뿐이다. 이순신 장군을 ‘리순신’ 장군이라거나 ‘순신 리’ 장군으로 표현하는 외국 학자들을 본 적이 없다. 역사 속에서 배운 그대로 이순신은 이순신이고 강감찬은 강감찬이고 을지문덕은 을지문덕이다.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도이다. 정조는 이산이다. 조선시대 왕세자나 대군들의 이름은 거의 외자였다. 이도와 ‘도 리’, 이산과 ‘산 리’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의 이름은 고작 세 글자다. 네 글자도 있지만 영어권처럼 가족 이름, 지은 이름, 가운데 이름이 있어 열 자가 넘는 경우가 없다. 그러니 굳이 성을 뒤에 붙일 이유가 없다. 세월이 달라진 점도 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골퍼 박세리는 그렇게 유명해졌음에도 찬호 박이고 세리 박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의 문화를 충분히 알고 존중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순신은 이순신이어야 하고 홍길동은 홍길동이어야 한다. 이제 와서 잘난 척 하자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게 맞았다. 대한민국은 이제 외국인 앞에서 쭈뼛쭈뼛거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높이에 있다. 한 번쯤 우리를 강제할 필요도 있다.

이영만 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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