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부산에 다녀왔다. 남포동에서 영도대교를 건너 이어지는 태종로 갓길은 온통 순백의 꽃이 만개한 이팝나무로 가득했다. 이팝나무는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꽃을 피운다. 이맘때면 서울 여의도와 강남역, 한강공원에도 한창일 시기다. 벚꽃, 사과, 배, 복숭아, 살구나무꽃 등 봄꽃이 진 이후 초여름 개화하는 키 큰 나무의 한 종으로, 요즘 전국 여러 곳의 도롯가 꽃 풍경을 만드는 가로수로 각광받고 있다.
이처럼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꽃이 적은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꽃이 피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무의 형태가 수려하고 길게 뻗는 곁가지가 주로 위를 향하기 때문에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도 가로수로 선호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시기, 버드나무나 버즘나무(플라타너스)처럼 공기 중에 꽃가루(실제 꽃가루가 아닌 씨앗에 붙어 있는 솜털)를 날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이팝나무꽃은 가늘고 길게 갈라진 통꽃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수술을 감싸고 있어서 꽃가루 날림이 적어 생활권역에 많이 심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잘 자랄 정도로 기후 적응력이 뛰어나고, 은행나무 못지않게 병충해에 강하다. 더욱이, 도시권 대기환경도 잘 견디며 자란다는 것도 가로수로서 좋은 특성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가을 무렵, 노랗게 단풍이 들어 깔끔하게 떨어지는 나뭇잎은 청소하기도 쉽다. 가지 끝에서 검게 익은 열매는 겨울 동안 직박구리 같은 텃새들의 먹이도 된다.
우리나라 가로수로서 이팝나무 만 한 나무가 있을까 싶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은 둥근 원뿔 모양으로 무리 지어 핀 꽃 모양이 흰 쌀밥을 연상케 해 붙인 것이라고 한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 직관적으로 붙였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수긍이 간다. 기름지고 풍성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꿀샘이 발달하지 않아서 벌이나 나비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꽃이다.
이렇다고 할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양봉 업계에서는 가로수로 이팝나무가 늘고 있는 상황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는 듯하다. 과거 척박한 나대지와 산림지역 녹화용으로 많이 심던 아까시나무가 초여름 꿀샘식물로 양봉산업에서 매우 중요해진 것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최근까지 도시 인근 지역이 산업용지나 주거지로의 개발이 늘고, 산림에서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과거에 많이 심던 아까시나무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지만 꿀샘이 덜 발달한 이팝나무를 많이 심는 현상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큰 이유가 됐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러나 가로수로 적합한 꿀샘식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합당한 대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뿌리가 길게 자라고 줄기에 가시가 있는 아까시나무를 도로변에 심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와 플라타너스를 대체해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 것과 꿀샘식물이 줄고 있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 볼 문제다.
키는 조금 작지만 아까시나무와 유사한 시기에 꽃이 피는 때죽나무, 빈도리나무, 찔레나무, 등나무와 팥배나무처럼 꿀샘식물로 적절한 자생종 식물을 공원이나 정원의 식수를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고민해 봄 직하다.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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