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무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조그마한 나라가 어떻게 50여 년 후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단 말인가. 그저 실소가 나왔지만 ‘신도안 예지자’는 역사의 필연이라고 했다.

그가 정감록에서 말한 정도령의 땅, 신도안에 들어온 것은 30여 년 전이었다. 계룡산 자락의 신도안은 우주의 기운이 모인 한반도에서도 가장 기가 세다는 곳. 1970년대 당시 그곳에는 수많은 영적 인물이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십 수년 토굴 기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수행에 방해된다며 자신의 몸 일부를 거세한 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정진한 덕분이라고 했다.

“50여 년 후면 한국이 세계에 우뚝 서게 될 거야. 우리의 높은 정신세계와 찬란한 문화를 모두가 인정하게 되고 많은 나라가 우리를 우러러보며 우리와 같이 하고 싶어해. 한글을 배우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수억 명으로 늘어나고 땅도 소련이나 중국만큼 커지게 되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천지개벽을 하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간다고 했다. 큰 나라 사이에 끼여 수백 수천의 외침에도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살아남은 것이 그 전조라고도 했다. 하지만 헛되고 헛됐다. 온 우주의 기운이 뭉쳤다는 신도안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3군통합군사기지 계룡대가 들어섰다. 그들에게는 신령의 땅이었지만 정부가 볼 때에는 혹세무민 하는 불온한 땅에 불과했다.

신도안의 전설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허무맹랑한 예언도 함께.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더듬어보니 마냥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유치했다. 형편에 맞지 않는 다소 느닷없는 국제행사였지만 훌륭하게 치러내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여겼던 4강 반열까지 올랐다. 그의 말대로 이 땅의 기운과 우리 국민의 하나 된 신기를 들먹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대 문화 사건이 터졌다. 우리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한 아이돌 가수들이 문화 일류도시 파리를 술렁이게 했다. 설마 했다. ‘국뽕’에 차오른 일부의 과대포장이려니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코리아(Korea)의 영어 첫 자를 따 K-팝이라는 이름까지 지어내면서 열광했고 K물결은 K-드라마, K-푸드, K-방산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를 강타했다.

김구 선생이 일찍이 예견했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가 된 것이었다. 그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고 했다. 이어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앞으로 십 수년 뒤 우리 땅도 엄청 넓어지게 될까. 중국이 구 소련처럼 해체되는 과정을 밟는다면 그 또한 모를 일이다. 고구려 옛 땅이었던 만주의 길림·요령·흑룡강성 등 ‘동북 3성’이 중국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대한민국 연방에 합류하고 그 바람을 타고 독립을 원하는 중국내 소수민족과 연해주 등이 가세하면 거대 강국이 될 수 있다.

일장춘몽이려니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니….

이영만 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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