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 BNE 입단한 무용수 윤소정
5월 1일까지·GS아트센터 BNE ‘아파나도르’
“다른 외모로 인한 차별보다 나만의 춤 봐줘”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단원 윤소정 [윤소정 페이스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5ab60f01e7c74a8ca58489268ad7481f_P1.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생후 7개월, 모국어를 발화하기도 전에 스페인으로 향했다. 춤을 처음 춘 것은 세 살 때였다. 이국적인 동양인 소녀는 안달루시아의 전통춤인 플라멩코를 췄다. 그 어렵다는 ‘영혼과의 대화’가 소녀의 손끝, 발끝에서 묻어났다. 스페인의 ‘무용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동양인 최초’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그때가 2019년이었다.
“(윤)소정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오디션 동안 소정은 제게 놀라움 자체였어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졌고, 자신의 춤을 추더라고요. 그 순간 국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루벤 올모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 예술감독은 윤소정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일종의 ‘사건’이었다. 까만 머리, 까만눈의 동양인이 스페인의 ‘국립 무용단체’에 정식 단원이 된 것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판소리를 하는 ‘푸른 눈의 서양인’ 격이다.
“사실 제겐 오랜 꿈이었다. 어릴 적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의 공연을 본 뒤 꼭 저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이 무용단엔 이들만의 스토리와 춤, 역사가 있어요.” (윤소정)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Ballet Nacional de España, BNE)은 네 가지 전통춤(플라멩코(Flamenco), 볼레라(Escuela Bolera), 양식화된 무용(Danza Estilizada), 민속무용(Folklore))을 국가 차원에서 보존, 재창조하기 위해 1978년 설립됐다. 한국으로 치면 ‘국립무용단’과 같다. 스페인에선 무용을 발레라고 부른다. 우리가 익히 아는 ‘클래식 발레’와는 다른 장르다.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단원 윤소정 [윤소정 페이스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0be24dec281543a8985b351ac0bc1484_P1.jpg)
영주권자로 스페인에서 살고 있지만, 이름도 국적도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윤소정의 BNE 입단은 현지에서도 화제였다. 미디어가 BNE ‘최초의 동양인’ 무용수를 조명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윤소정(31)은 “분명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받은 적은 없다”며 “오직 나의 춤과 나만의 스타일을 봐줬다”고 말했다.
BNE는 스페인 무용수들의 ‘꿈의 단체’다. 그만큼 오디션도 까다롭고 진입장벽도 높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며 스페인에선 문화예술의 다양성과 자유를 탐색하고 전통문화를 복권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애초 ‘전통 보존’의 기치를 내건 만큼 단체는 스페인 국적자나 영주권자만이 입단 오디션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스페인의 4가지 전통춤을 모두 출 수 있어야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 발레단의 단원은 총 45명. 군무, 솔리스트, 수석 무용수의 세 등급으로 나뉘어있다. 그 중 정단워는 군무 총 22~24명, 솔리스트와 수석이 남녀 무용수를 포함해 각각 6명, 4명이다. 입단도 어렵지만 승급을 위한 단계가 꽤나 높은 단체다. 스페인에서 전통춤을 기반으로 하는 국립무용단체는 이곳뿐이다. 윤소정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무용단이자,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단체”라고 귀띔한다. 이곳에서 그는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무용수로서 성장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활동 중인 윤소정은 한국에서도 몇 차례 공연을 가졌지만, BNE와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BNE는 GS아트센터의 개관공연에 초청(5월 1일까지), 스페인 출신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로 꼽히는 마르코스 모라우와 협업한 ‘아파나도르’를 선보인다.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 ‘아파나도르’ [GS아트센터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59163aee66af452cb32578033a3acda5_P1.jpg)
윤소정은 “무용단에선 꾸준히 전통춤과 현대무용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며 “관객들이 좋아하는 동시대 감각에 맞춰 전통을 재해석, 재창조하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의 모든 전통예술 장르가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들기 위해 현재와 대화하는 방식이다.
모라우와의 협업은 BNE 단원들에겐 ‘도전’이었다. 기존에 해오던 ‘춤의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우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 작품은 콜롬비아의 사진작가 루벤 아파나도르가 플라멩코 무용수들을 촬영한 흑백 사진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정열의 상징 같은 플라멩코의 붉은색 대신 흑백의 대비가 강렬하다.
작업에 참여한 미겔 앙헬 코르바초 협력 감독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스페인 무용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 작업”이자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가득 차 정교함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윤소정은 특히 “스페인 무용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은 움직임, 익숙지 않은 동작이 상당히 많았다”며 “스페인 무용에선 목을 안 쓰는 데 이번엔 목을 쓰는 동작이 많아 아팠던 기억이 있다”며 웃었다.
전통을 보존하고 그것을 재해석·재창조해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것은 발레단과 무용수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스페인국립플라멩코발레단 최초의 동양인 단원 윤소정 [GS아트센터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2ab960980ed149dfb202eae5570b738b_P1.jpg)
“오늘의 관객들은 전통은 지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생각하고, 색다른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크더라고요. 현대무용과 협업하는 무대는 현지에서도 대체로 반응이 좋아요. 물론 이게 무슨 ‘플라멩코’야, 이게 무슨 전통이냐며 ‘매의 눈’으로 지적하는 관객도 많아요. 그 사이에서 우리의 방향성을 찾아 계속 도전하고 진화하고 있어요.”
그에게 ‘스페인 전통춤’은 자신의 DNA와 같다. 가장 자신 있는 춤은 에스꾸엘라 볼레라. 일종의 하이브리드 스타일이다. 프랑스에서 발레가 유행할 때 18세기 스페인에선 자신들의 춤을 정립하기 위해 기존의 민속무용, 궁중무용과 결합해 ‘볼레라’ 장르를 만들었다. 플라멩코보다 역사와 기원이 길다. 발레 슈즈를 신고 하체는 발레 동작을, 상체는 캐스터네츠와 함께 춤을 추는 동작이 조화를 이룬다. 그는 “스페인의 춤 특히 플라멩코는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춤”이라고 말한다.
“스페인의 춤엔 정답이 없어요.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누가 더 잘 춘다 못 춘다의 기준을 두지 않아요. 테크닉을 가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표현’으로 ‘나만의 춤’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어쩌면 모든 무용이 다 그럴 것 같아요.”
어느덧 입단 7년 차에 접어든 그는 BNE에서 “스페인 무용수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레퍼토리를 쌓아가며 무용수로서 성숙해진 과정을 걷고 있다”고 했다. 오래 품은 꿈도 있다. 스페인 춤을 한국에 알리며 두 나라의 가교가 되는 일이다. 발목과 손가락 골절은 기본, 정강이뼈 부상으로 무용수로서의 시련도 겪었지만, 윤소정에게 “춤은 곧 삶”이다.
“처음 춤을 췄을 때부터 무용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단 한 번도 헷갈린 적이 없었고, 늘 확고했어요. 춤이 아니면 뭘 하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춤을 출 생각이에요. 용단에서 열심히 활동해 더 많은 배움과 경험을 쌓고, 한국과 스페인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스페인 춤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