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연일 폭염이 계속되면서 전기료 누진제 논란이 한창입니다. 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을 못켠다는 소비자들의 제도 개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정부 측은 부자 감세와 전력 대란 가능성,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수용 불가 입장을 고집해 국민들을 더욱 열받게 하고 있습니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지난 9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와 같다”고 했습니다.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는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층의 전기 사용을 억제하려는 것인데 섣불리 개편하면 부자 감세 효과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럴드경제가 입수한 지난 2013년 6월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를 보면 되레 누진제 탓에 가구원 수가 많은 서민층이 가구원 수가 적은 부자보다 비싼 전기를 쓰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최저생계비 미만인 5인 이상 빈곤 가구의 전기요금 단가는 평균 165.7원/kwh으로, 최저생계비가 5배 이상인 1인 고소득 가구의 111.1원/kwh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저소득층의 부담을 줄인다는 누진제의 시행 취지가 무색합니다. 윤태연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누진제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많은 저소득 가구가 가장 큰 불이익을 받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자들한테 세금을 더 걷으려고 누진제를 고수하겠다는 건 비싼 전기료를 쓰는 서민들에 대해선 눈을 감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더욱이 대기업 법인세 등은 왕창 깎아줬던 정부가 부자 감세를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습니다.

문득 과거 무상급식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같은 논리를 폈습니다. 지원이 필요 없는 부잣집 아이들한테까지 무상급식을 해서 나랏돈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과거 무상급식 논란이나 현 누진제 개편 논란에서 반대론자들은 일부 부자들 때문에 대다수 서민에게까지 혜택을 줄 순 없다는 것인데요. 이는 곧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식의 회피성 주장일 뿐입니다.

게다가 산업용과 상업용 전기는 누진제가 없습니다. 가정용은 월평균 사용량이 100㎾h 이하면 ㎾h당 요금은 60.7원이지만 사용량이 500㎾h를 넘으면 ㎾h당 요금은 11.7배인 709.5원입니다. 반면 아무리 많이 써도 산업용은 ㎾h당 81원(6~8월 기준)이며 상업용은 105원입니다. 만약 일반 가정에서 월 600㎾h를 쓰면 전기요금은 21만원 넘게 나오지만 기업은 5만원, 상점은 6만원만 내면 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전기료 누진제가 형평성에 어긋나고, ‘부자 감세, 서민 증세’의 대표적인 예라는 지적도 들립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날씨가 무더워 올 여름 전기료가 20만원 가까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이다. 평소보다 배 정도 더 썼는데 요금은 5배나 많이 나올 것 같다”면서 “내가 더 많이 썼으니까 덜 쓴 사람보다 더 많은 요금을 내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기업들보다 몇배나 비싸게 주고 전기를 써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4인 가구 기준 월 평균 전력 사용량은 342kw. 이 경우 요금은 5만3085원(부가세 제외)으로, kwh당 약 155원입니다. 이는 산업용 평균 전력요금의 1.5배에 해당합니다. 부자도 아니고 전력을 과소비하지도 않은 평범한 4인 가구에서 산업체보다 1.5배 비싼 전기료를 지불하는 현 누진제 체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왜 정부만 모르고 있을까요?

“누진제를 개편하면 단전 사태가 온다”는 정부 측 주장도 일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전체 전기 사용량 중 가정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3.6%에 불과하고, 산업용이 55%, 상업용이 24%를 차지합니다.

또 우리나라 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1278㎾h로 OECD 34개국(2012년 기준) 중 26위, OECD 평균(2335㎾h)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산업ㆍ상업용을 합치면 소비량 순위는 OECD 국가 중 8위로 올라갑니다.

실제 지난 2011년 9월 ‘블랙 아웃(대정전)’ 소동은 정부가 전력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하고 원전(原電) 가동을 일시 중단하면서 벌어진 일이며, 가정용 사용량과는 무관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과거 무상급식 논란 때도 무상급식을 하면 당장 지방재정에 엄청난 구멍이라도 나는 것처럼 당시 집권여당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측은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이시종 충북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재정은 충북도 전체 예산의 0.5% 수준으로, 이는 5차선 도로를 1.5㎞ 뚫는 비용에 불과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부는 더이상 근거없는 부자 감세와 ‘블랙아웃’ 가능성으로 여론을 호도하지 말고 생활 수준 및 전력 소비 패턴의 변화에 맞춰 가정용 누진제 개편에 나설 때입니다. 특히 평균적인 전력 소비 가구의 요금 단가가 산업체 내지 일반 상업용 수준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