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공동으로 미국에 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했다고 21일 발표했다.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24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국내 2위 철강 기업 현대제철이 58억달러를 들여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270만t 규모의 자동차 강판 제철소를 건립하는 게 포함됐는데, 1위 업체인 포스코가 이례적으로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포스코는 최소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일부 생산 물량의 직접 판매도 추진한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을 국내에서 오랫동안 유일하게 생산해 왔던 포스코에, 자동차 강판이 절실했던 현대차는 오랜 기간 ‘을’이었다. 이후 현대제철이 설립되면서 철강 1·2위 업체간 싸움도 벌여온 앙숙 관계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 포격’을 받는 공동의 위기 속에서 최대 라이벌과도 손을 잡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달 1~20일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3% 급감한 61억8200만달러였다는 관세청의 21일 발표는 ‘트럼프 관세’의 충격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달 들어 25% 자동차 관세, 그리고 상호 관세 가운데 10% 기본 관세가 본격적으로 부과되기 시작하자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것이다. 이미 3월 12일부터 25% 관세가 적용 중인 철강 업계의 미국 수출액은 지난달에만 16% 넘게 급감했고 이달 20일까지는전년 보다 8.7% 줄었다. 가뜩이나 중국산 덤핑 공세에 밀리던 국내 철강 기업들에 미국발 관세는 엎친데 덮친격이다. 트럼프의 관세 장벽을 넘으려면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 말고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현대차와 포스코의 제휴는 이같은 난관을 돌파할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현대제철로서는 자금여력이 충분한 포스코가 가세하면서 투자금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 포스코는 이번 투자로 마침내 북미 시장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10여년 전부터 꿈꾸어 오던 현지 완결형 투자 계획을 현대제철의 미 제철소 지분 투자를 통해 일정 부분 이룰 수 있게 된 셈이다. 양사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대응해 이차전지 소재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는데 시너지 확대가 기대된다.
철강 ‘빅2’의 상생 전략은 ‘트럼프 스톰’을 헤쳐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다른 산업에도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글로벌 통상 환경과 패러다임 변화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만 보는 이기심과 편협함은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 무역 영토 확장에 나라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경쟁기업과도 손잡을 수 있는 유연성과 돌파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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