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나이키골프는 지난 1984년 골프업계에 처음 뛰어들어 골프화와 의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타이거 우즈와 96년에 대형 계약을 맺기 시작하면서 골프계의 다른 부문으로도 진출하기 시작했고 영향력을 키웠다. 후발 주자지만 ‘혁신’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용품과 볼을 만들었다. 나이키골프가 내는 제품들은 전통주의자들이 적응하기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했다. 사각 드라이버였던 스모스퀘어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골프의류와 골프화는 시장에서 선두로 올라섰어도 용품과 관련해서는 기존 브랜드들이 워낙 탄탄한 발전과 특허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뚫기가 어려웠다. 20년만에 다시 원래 잘하던 의류와 골프화만 남기고 클럽, 볼, 백 등 용품 부문은 접기로 했다. 미국 시장이 2008년 이후 골프인구가 늘어나지 않은 것이 큰 이유다. 경쟁업체인 아디다스 역시 지난 5월 자사 골프용품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 아담스, 애시워스를 일부나 전부 매각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일에는 세계 제일의 골프 용품 유통 체인인 골프스미스가 파산을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골프 참여 인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골프재단(NGF)에 따르면 지난 2011년 2570만명이던 골프 인구가 4년 뒤인 지난해엔 2410만명으로 160만명이나 줄어들었다. 나이키가 골프쪽에 발을 디딘 1984년부터 30여년의 역사상 주요한 이슈를 <골프다이제스트>의 최근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본다.
1984 -- 나이키가 신발과 골프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셔츠 생산은 적었지만 골프화 라인인 ‘턴베리(Turnberry)’는 핫아이템이었다. 1985 -- 스페인의 세베 바예스테로스가 나이키와 계약한 첫 번째 선수다. 그 뒤로 커티스 스트레인지, 피터 제이콥슨, 줄리 잉스터, US여자오픈 우승자 케시 베이커가 의류 계약을 했다. 1986 -- 조지아대학팀이 나이키와 처음 계약한 단체 팀이다. 1987 -- 오클라호마대학 남자팀이 나이키옷을 입고 미국대학연맹 NCAA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한 팀이다.
1988 -- 나이키 옷을 입는 커티스 스트레인지가 매사추세츠 브루클라인에서 열린 메이저인 US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했고, 이듬해인 89년에도 2연패했다. 1989 -- 첫 번째 골프장갑이 나왔다. ‘심리스 팜기술’이 가죽과 접목됐다. 1990 -- 커티스 스트레인지, 피터 제이콥슨과 함께 한 ‘빅스윙’ 동영상이 첫 CF광고로 만들어졌다. 방수기능이 있는 신발 에어클래식플러스와 에어웨이블리를 출시했다. 1993 -- 나이키는 첫 번째 고어텍스 골프화를 제작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PGA투어의 2부투어(오늘날 웹닷컴투어)이던 벤호건투어를 이어 나이키투어로 1999년까지 7년간 후원한다. 1994 -- 타월과 헤드커버를 출시한다.
1996 --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와 5년간 400만달러 계약에 사인했다. ‘헬로 월드’, ‘나는 타이거 우즈’라는 TV 스폿광고를 제작했다. 우즈 브랜드의 신발이 나오게 된다. 1997 --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를 21세에 18언더파로 2위 톰 카이트와는 12타차로 우승하면서 우승 셔츠가 대량 제작 판매되었다. 나이키는 또한 가죽 매듭과 스파이크가 있는 SSL슈즈를 출시한다. 1998 -- 밥 우드 사장이 취임하면서 나이키골프가 골프용품까지 만드는 독립사업군으로 논의된다. 프리시즌이란 이름을 단 첫 번째 골프볼의 세가지 모델 ‘디스턴스’, ‘투어컨트롤’, ‘스핀컨트롤’을 내게 된다. 1999 -- 글렌 데이가 나이키볼을 사용해서 힐튼헤드에서 열린 PGA투어에서 우승한 첫 선수가 됐다. 타이거 우즈가 볼을 튀기다가 치는 유명한 광고가 나오면서 용품 사업까지 진출하는 암시를 둔다. 2000 -- 우즈가 타이틀리스트 볼과 관계를 끊고 나이키로 바꾼다. 솔리드 코어의 ‘투어애큐러시(Tour Accuracy)’는 이후 타이거 슬램을 달성을 함께 했다. 이는 전통 용품사 타이틀리스트로 인해 프로V1을 생산하게 하는 촉진시켰다.
2001 -- 나이키는 톰 스타이트를 고용하고 그의 회사 임팩트골프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톰 스타이트는 이 분야 존경받는 기술자이자 전문가로 나이키 용품 부문 책임자로 2013년7월까지 12년간 일한다. 데이비드 듀발이 나이키 용품을 가지고 잉글랜드 로열리덤&세인트앤스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인 디오픈에서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됐다. 타이거 우즈는 5년간 1억달러에 용품 계약을 연장했다. 파워디스턴스 볼이 소개되면서 타이거 우즈의 볼 ‘타이거 애큐러시TW’가 팔리기 시작했다. 나이키골프는 자체 부서를 가지고 2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해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2002 -- 2월에 나이키 골프클럽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R&D센터인 디오븐(The Oven)은 포트워스에 문을 열었다. 우즈는 나이키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를 들고나가 아일랜드 킬러니에서 열린 WGC아메리칸익스프레스 이벤트 대회에서 우승한다.
2003 -- 나이키골프가 골프화 분야에서 에토닉을 추월하고 풋조이에 이어 2위 업체로 등극한다. 보반 펠트가 나이키 퍼터를 들고 나가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된다. 사이키델릭한 박스에 포장돼 나온 모조(Mojo)볼, 이그나이트 드라이버가 출시됐다. 셔츠에서는 드라이핏(Dri-FIT) 숏슬리브와 반 폴라 형태의 목넥(mock-neck)셔츠를 입고나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골프셔츠는 목에 칼라가 기본적으로 골프 에티켓으로 여겨졌으나 타이거 우즈가 입어서 칼라가 없는 티도 골프에 통용된다. 이 무렵 필 미켈슨이 ‘타이거 우즈가 열등한 클럽(inferior clubs)으로도 잘 친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미켈슨은 나이키골프에 사과했다. 2004 -- 캐비티백의 슬링샷 아이언과 CPR하이브리드가 <골프다이제스트> 용품 평가인 핫리스트에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나이키 원블랙, 원골드 골프볼도 출시되었다. 2005 -- 우즈가 한 해에 마스터스와 디오픈에서 동시에 우승했다. 특히 마스터스 마지막날 16번 홀에서의 칩인 버디는 압권이었다. 볼이 거의 90도를 휘어서 홀에 들어갔고, 홀에 들어가기 직전 나이키 로고가 보였다. 우즈는 이그나이트 드라이버로 우승했다. 나이키는 미셸 위와 새로운 계약을 하면서 영성용 볼 ‘파워레이디’를 출시했고, 사스콰치가 투어에 나오기 시작했다. 2006 -- 나이키골프 의류가 골프에서 넘버원 브랜드로 등극했다. 타이거 우즈에 힘입어 PGA투어의 드라이버, 아이언, 페어웨이우드 승수에서 선두로 올랐다. 나이키는 앤서니 김과 계약을 했다.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와 재계약을 했다. 슬링샷 투어, 하이브리드 아이언, 쥬스볼이 출시됐다.
2007 -- SQ 스모스퀘어가 소매시장에 나왔다. 몇몇 클럽이 미국골프협회(USGA) 공인규정을 초과하면서 변수를 조절해 성능을 규정에 맞게 낮춘 클럽을 냈다. 2008 -- 신디 데이비스가 밥 우드를 대신해 대표에 올랐다. 하이엔드 의류 타이거 우즈 플래티넘이 선보였다. 나이키골프는 미국의 라이더컵 팀 공식 후원사가 됐다. 우즈는 2008 US오픈에서 14번째 메이저 우승을 거뒀고 회사는 7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종업원은 700명으로 늘었다. 2009 -- 가장 가벼운 골프화 에어줌베이퍼(Air Zoom Vapor)가 히트했다. 2011 -- 소속 선수 찰 슈웨첼이 마스터스 우승하면서 지난 25개의 메이저 중에 나이키가 거둔 10번째 우승이었다. 루나 쿠션닝을 갖추고 플라이와이어 기술이 들어간 루나 컨트롤 골프화가 출시됐다. 2012 --클리브랜드골프, 스릭스에서 네이트 래드클리프가 기술 책임자로 선임되다.
2013 --로리 매킬로이가 나이키와 10년간 2억달러에 계약하다. 우즈는 계약을 연장했다. 2014 --나이키 브랜드에서 20년 이상 일한 대릭 애시포드가 52세에 조기 은퇴한 신디 데이비스 후임 대표로 임명되다. 매킬로이가 메이저인 디오픈과 PGA챔피언십에서 연속 우승하다. 2015 --매출 규모가 2013년 7억9200만달러에서, 2014년 7억8900만달러로 하락한 뒤 이해 7억7100만달러로 3년 연속 하락했다. 2016 --블룸버그는 나이키가 지난 5월까지의 2015~16회계연도에서 매출이 8.2% 하락한 7억600만달러라고 발표, 이에 따라 용품사업에서 철수하기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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