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무능하고 의료계는 무치(無恥)하며 국민들만 패자가 됐다. 지난해 2월 6일 발표된 ‘2025학년도 의대 2천명 증원’부터 촉발돼 1년 넘게 끌어온 정부와 의료계의 ‘전쟁’에 가까웠던 갈등이 사실상 정부의 ‘백기’로 끝났다. 그런데도 의사와 전공의 단체는 더 이상의 ‘전리품’을 원하고 있다. 정부가 이달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조건으로 2026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방침 이전인 3058명으로 동결해달라는 대학들의 요구를 전격 수용했는데, 의대생은 집단행동을 풀지 않고 의사·전공의 단체에선 감원 요구까지 나왔다. 할 수 있는 것은 협박 뿐인 정부의 실력은 어디까지 바닥을 드러낼지,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몸값 흥정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암담하기만 하다.

최근 주요 의대 학장은 미복귀 의대생에 대한 제적 처리 방침을 시사했다. 김정은 서울대 의대 학장은 11일 교수들에게 서한을 보내 “학생들이 오는 27일까지 휴학을 철회하고 복학원을 제출해 수업에 복귀해야 한다”며 “복학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학칙에 따라 비가역적인 미등록 제적 또는 유급 처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편성범·연세대 최재영 의대 학장도 마감 기한 내 등록 없이는 제적 처리하겠다는 뜻을 서신이나 유인물을 통해 밝혔다고 한다. 이에 앞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내년도 의대 정원 동결 방침을 밝힌 7일 브리핑에서 이달 말까지 의대생 복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를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2000명을 증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겸 의협 부회장은 “복귀하지 않으면 5058명? 괘씸죄도 아니고 학생들을 상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와 협박 뿐”이라며 “(2024~2026년도 의대 신입생) 7500명을 어떻게 교육할지 대안도 없이 내년 신입생 선발부터 걱정하는 모습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2026학년도에는 한 명도 뽑지 말자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했다고 한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동결키로 한 것은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의료개혁 동력이 무너진 탓이 크다. 그런데 의료계가 이마저도 무조건 반대하고 나선 것은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의대 정원을 의사 집단의 뜻대로 ‘알박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의 의대 증원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정책 실패 사례가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염원하는 의료개혁의 정당성과 긴급성이 부정될 순 없다. 의사이기 이전에 국민된 도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현명하게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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