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래 젊게 살아요. 철이 없는 거지. 스무살 정도는 나이를 거꾸로 먹은 거지.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둥글둥글 마모되고 사람에 대한 포용력도 커지고 사물에 대한 깨달음도 온다지만, 너무 명약관화한 것도 두루뭉실해지면 성인 자격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적 발언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면 몰라도 꼭 해야되는 상황에 있다면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지식인된 도리 아닐까요?”
한국영화계에서 예순이 넘은 나이라면 뒷방을 차고 앉아 ‘에헴’하는 기침을 섞어 잔소리나 가끔하면서 ‘원로’ 대접이나 받는 게 예사라지만 정지영 감독(66)은 14년만의 신작 ‘부러진 화살’에서 날선 현실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자칫 딱딱한 교훈조나 비장한 사설조가 될 법한 실화 소재의 영화에서 20대 젊은 관객마저 들었다 놨다하는, 재기넘치는 유머와 매끄러운 리듬감각은 ‘부러진 화살’의 빛나는 미덕 중의 하나다.
“영화가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다면 그건 작금의 캐릭터에서 기인하는 것이죠. ‘하얀 전쟁’이나 ‘남부군’ 같은 경우엔 답답한 지식인이 주인공인데 그런 인물들한테 무슨 유머가 나오겠어요. 제 옛날 작품들과는 다르게 유머코드가 강한 것은 (모델이 된 실존인물인) 김명호 교수나 박훈 변호사가 원래 재미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상식적인 눈으로볼 때 평범하지 않고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인물을 ‘운반’(묘사)하려다 보니 자연히 그런 웃음이 유발되지 않았나 싶어요. 취재를 통해서 인물에 충실하다보니까 말이죠.”
‘부러진 화살’은 이른바 석궁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실제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수학과 조교수로 재임 중이던 김명호 교수가 대학별 고사 수학 출제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지적한 후 부교수 승진과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 교수는 이에 반발해 교수 지위 학인 소송에 나섰으나 결국 패소한 후 재판결과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2007년 담당판사를 찾아가 석궁을 들이댔다. 담당판사의 모교가 바로 김 교수가 재직했던 대학이었다. 이 사건은 ‘사법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당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으며 결국 김 교수는 거듭된 항소심끝에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후 지난해 만기출소했다.
실제 당사자인 김명호 교수는 영화 속에선 김경호(안성기 분)로 이름이 살짝 바뀌고, 담당변호사도 실제 박훈에서 박준(박원상 분)으로 바뀌었을 뿐 전체적인 틀과 주요 공판내용은 실화에 바탕해 재구성했다. 영화는 판사를 찾아간 김교수가 실제 석궁을 쏴 상대가 부상을 했는지, 석궁을 들고 위협만 했을 뿐인지 여부를 가리는 공판 과정을 주로 그린다. “사회의 합의와 법을 지키는 것이 보수”라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영화 속 김 교수가 오히려 “법대로”를 외치며 법규정을 조목조목 들이대고, 검사와 판사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하거나 결정적 증인이나 증거를 묵살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특히 석궁사건의 ‘피해자’인 판사가 자신의 배에 화살이 꽂혀 묻었다는 옷의 혈흔을 누구의 것인지 감식하자는 피고 김교수측의 주장을 외면하는 장면에선 객석에서 한숨과 야유가 흘러나올 정도다. 영화 속에서 검사와 판사 등 사법권력은 뻔뻔하고 파렴치하며 무원칙하며 이기적이고 탈법적인 집단으로 묘사된다. 사법권력에 대한 분노지수를 높이는 장면에 극중 여럿이다. 국민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안성기가 김교수 역할을 맡아 바보스러울 정도의 철저한 원칙주의자를 연기한다. 그게 오히려 관객들에겐 능청스러운 유머로 다가온다. 이 영화는 지난 18일 개봉해 첫 주 2위에서 두번째 주말엔 1위에 오르며 누적관객 187만명을 돌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전국민적으로 잘 알려진 사건이죠. 워낙 유명한 사건이지만 실체는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문성근씨의 추천으로 동명의 르포를 읽게 됐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렇다면 거의 모두가 잘못 알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라고 짐작했죠. 진실을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영화화에 착수했습니다.”
정 감독은 1998년작 ‘까’를 마지막으로 이후 몇 편의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의 영화화는 무려 8년이나 매달렸던 기획이었고,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은지화’, 사극 ‘울밑에 선 봉선화’와 한국계 러시아 로커의 전기영화 ‘빅토르 최’ 등도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부러진 화살’은 ‘리얼리스트’인 정 감독의 영화적 구미를 확 잡아당겼다.
“일단 공판 기록을 보니 재판과정이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그 다음에 김명호 교수를 만났더니 또 그 양반이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더라구요. 자료보강을 위해 당시 사건의 김 교수측 변호사(박훈)를 대면했더니 그 분도 역시 한 ‘캐릭터’ 하더라고. 그래서 둘을 주인공으로 해서 버디무비로 작정했습니다.”
‘부러진 화살’이 지난해말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후 화제가 되면서 법조계가 술렁거렸고, 최근엔 사법부에서 일선 판사들에게 ‘대응지침’까지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 감독은 “반응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이고, 영화의 주요 내용은 공판 기록 거의 그대로지만 영화를 두고 법적 논란을 가져올만한 부분은 다 피해갔다”며 “사건 당사자와 관계자들의 본명이나 지명, 구치소 모두 바꿨기 때문에 시비가 걸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 감독은 고려대 불문과 출신으로 지난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장편 데뷔해 베트남전을 다룬 ‘하얀전쟁’,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한 ‘남부군’ 등 문제작을 내왔던 한국의 대표적인 리얼리즘 감독으로 꼽힌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미국, 독일, 일본 등 전후 문학작품이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양분이 됐고, 한국 영화사의 리얼리즘 걸작 ‘오발탄’(감독 유현목)이 ‘뿌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영화세계를 관통하는 ‘화두’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현대사를 많이 다뤄왔죠. 그래서 돌이켜보니 제가 천착하고 있는 화두는 권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디다. 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데 분배가 안 되고 누군가에 의해 독점이 되는가, 그것이 개개인을 얼마나 불편하게 만드는가라는 데 가장 큰 관심이 있습니다.”
정 감독의 아들은 상민씨(75)는 ‘부러진 화살’의 공동제자사인 아우라픽쳐스의 대표이자 영화감독으로 2대가 영화인의 핏줄을 내림하게 됐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로 돈을 벌어서 스탭들에게 평균 이상의 개런티를 돌려줬으면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서너 편 정도를 더 만들었으면 좋겠다, 안 되면 할 수 없고”라고 바람을 덧붙였다.
<이형석 기자> / suk@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