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일의 기다림은 고통스러웠지만 값진 결과를 낳았다. 동기 여학생을 집단성추행 한 의대생 3명에 대해 고려대학교는 지난 5일 최고 수위의 징계인 출교 처분을 내렸다.

사건이 발생한지 세달이 훌쩍 지나서야 징계가 내려진 것은 유감이지만 고려대가 늦게나마 바람직한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피해 여학생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의사의 꿈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고려대가 가해 학생들에게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린 것은 학교 당국이 학내 성폭력 문제를 엄중히 다루는 바람직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학내 성폭력 문제는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해마다 크고 작은 학내 성폭력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지만 대학들은 이렇다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되레 피해자들이 2차, 3차 피해를 입으며 더 큰 고통을 받는 것도 예사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10년 한해 성폭력 상담 신청 건수 1313건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교에서 알게 된 사이인 경우가 이중 143건(10.9%)이다. 박성혁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가 지난 2007년 전국의 4년제ㆍ2년제 대학 272개의 성폭력 예방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는 학내 성폭력 사건이 학생과 학생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학내 성폭력 예방과 사건 발생시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학내 성폭력상담소에 대한 대학 차원의 투자가 시급하다.

학내 성폭력상담소는 사건 발생 시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이번 성추행 의대생 사건 피해 여학생도 사건발생 다음날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를 한 바 있다. 인력과 재원을 늘려 실질적인 상담이 이뤄지게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학내 성폭력상담소의 현실은 열악하기만하다. 재정적 투자가 부족하다보니 전문 상담가는 1-2명에 그친다. 고대 양성평등센터도 전문 상담가는 한명 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담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학생 및 학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반성폭력교육, 인권교육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인식 개선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 고려대 졸업생 및 시민 56명이 “고려대가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며 접수한 진정을 계기로 고려대 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까지 범위를 넓혀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현장 조사 결과 타 대학까지 사례를 확대해야한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아직 상임위에서 결정되진 않았지만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려대 내에서는 여학생위원회 등 학내 5개 단체로 이뤄진 ‘반(反) 성폭력 연대회의’가 구성돼 학내 성폭력 인식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반 성폭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등 반성폭력운동을 시작했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생회도 5일 오후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열고 성폭행 재발방지를 위한 학교 측의 노력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학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채우기에도 모자란 대학 캠퍼스에서 다신 그누구도 이런 성폭력 문제로 고통받지 않아야 한다.

<박수진 기자@ssujin84> sjp10@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