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두나의 휴대폰 케이스에는 태극기 스티커가 붙어있다.

“왜 태극기를 붙이신 거예요? 보통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안 하고 다니잖아요.”

“하하하!” 호탕한 웃음이 터진다. “태극기가 왜요? 미국, 영국 사람들은 그들 나라 국기로 많이 꾸미잖아요. 태극기도 할 수 있죠.(웃음) 좋아서 붙여요.”

할리우드에 첫 발을 디딘지 어느덧 7년, 배두나는 지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전히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2년 만에 한국 영화 ‘터널’의 주연을 맡아 개봉을 앞두고 있고, 워쇼스키 자매와의 네 번째 작품인 미국드라마 ‘센스8’ 시즌2 촬영에도 한창이다. 이젠 서울을 떠나 전세계를 오가는 것이 익숙하고, 할리우드 배우와의 호흡도 몸에 익었다.

“딱히 제가 내셔널리즘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다는 것도 아니죠. (웃음) 이게 내 아이덴티티(identityㆍ정체성)니까요. 휴대폰이 어디에 있어도, 이건 ‘배두나 거야’. 딱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배두나는 지난 2009년 워쇼스키 자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최근 방한은 미국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인 ‘센스8’의 홍보를 겸해 진행됐다. 드라마에서 배두나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한국인 ‘선’ 역할을 맡았다.

“2주에 한 번씩 거하게 이사를 하고 있어요. 베를린을 시작으로 뭄바이, 멕시코, 샌프란시스코, 이태리, 런던…. 감독님의 철칙이 있어요. 어떤 행사나 축제가 있으면 반드시 그 날 가서 찍어야 한다는 거죠. 수백만명이 모인 군중의 스케일은 CG와는 비할 바가 없거든요.” 최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축제 ‘파라다 게이’(Parada Gay)에서 찍힌 사진 역시 ‘센스8’ 촬영차 포착된 모습이었다. 국내 촬영도 예정돼있다. 오는 8월 중순 부천은 물론 서울지하철 7호선 일대에서 차량 추격 액션신도 촬영된다. ‘센스8’ 시즌1 당시엔 청계천, DDP, 남산이 등장했다. 이번에도 한국의 곳곳이 담기는 만큼 배두나로서도 “서울을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고 한다.

워쇼스키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춘 이후 내리 네 작품을 함께 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에 이어 ‘센스8’ 시즌1, 2로 함께 하고 있다. “그러게요. 감독님들이 하는 작품을 많이 했죠. 처음 인연을 맺고, 이거 하자 하시니, ‘네 좋아요’ 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워낙 서로를 잘 알고 감독님들이 제 연기를 좋아해주세요. 저도 감독님들의 스타일과 연출을 좋아하고요. 마음으로도 의지가 많이 되고, 도전할 만한 꺼리를 많이 주셔서 달성해나가는 과정의 뿌듯함이 커요.”

지금이야 시간이 흘렀다지만, ‘클라우스 아틀라스’ 때만 해도 부담이 적지 않았다. “영어도 못 하는데 첫 주연이었고, 리딩을 갔는데 눈 앞에 톰 행크스가 앉아 있는거죠. 아…정말 어떡하지 싶었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한국에서 연기를 오래 했다고 해도 영어로 연기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표현방법도 연기의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일부러 통역 없이 부딪혔어요. 현장에서 친구도 사귀고, 더 빨리 소통하려고요. 그 쪽 현장에선 한국에서 없는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고요.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저를 이해해주더라고요.”

워쇼스키 감독은 배두나가 할리우드 현장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최고의 조력자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깊다. “연기를 할 때 감독님들께 많이 의지해요. 캐릭터를 스스로 자신있게 만들어간다기 보다 늘 ‘키’를 달라고 하죠. 작가와 감독은 그 사람이 만든 캐릭터를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마음으로 의지를 많이 해요.”

워쇼스키 감독과의 만남 이후 배두나는 게임 속 여전사처럼 무술 실력이 부쩍 늘었다. 17 대 1은 기본인 ‘선’ 역할을 맡기 위해 배두나는 매일같이 근력운동에 유산소 운동을 겸한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이야기처럼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아프지 않으면 어제 연습에 온 열정을 쏟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센스8’ 팬들이 듣는다면 배신감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실제의 전 나른하고 게을러요. 제일 좋아하는 건 누워서 생각하는 거예요.(웃음) 연기하면서도 제 태도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센스8’을 찍을 때면 더 씩씩해진 느낌이 들거든요.”

한국과 미국, 현재는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시차 적응’은 엄두도 못 내는 생활의 연속이다. “몸은 부서질 것 같다”지만 여전히 즐거운 작업이다. 올해에는 특히나 한국영화를 통해 국내팬들과 만나는 기쁨도 크다.

“센스8‘ 시즌1과 시즌2 사이에 영화 ’터널‘이 있어 좋아요. 촬영장에서 오랜만의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요. 왔다갔다 하며 촬영을 하고 있지만 제 나름대로는 한국 작품 하나, 할리우드 작품 하나씩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도 기다리는 관객 입장에선 제가 너무 안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센스8‘이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 드라마도 출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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