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대재앙 앞에서 과거사 피해자들도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고, 팽팽한 신경전도 눈독듯 사라졌다. 전쟁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국가들도 십시일반 돕기에 나섰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닷새째에 들어가면서 구조작업이 본격화 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등 각국 지원단이 현지에 속속 도착해 힘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감정의 골이 깊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도 이웃의 불행을 돕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 나서면서 진정한 인도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미군이 일본 지진 피해 및 원전 사고 지역에서 방사능에 오염돼 긴장을 더하고 있다.
15명으로 구성된 중국 구조팀은 13일 하네다(羽田) 공항을 통해 일본에 도착 즉시 이와테(岩手)현으로 향해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일본이 중국 구조팀을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1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직후 베이징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이번 참사로 인한 희생자와 일본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중국은 지진이 일어나기 쉬운 국가로서 지금 일본 국민의 심정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때 일본 정부는 중국에 구조팀과 구호품을 보내줬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일본 정부가 필요로 하는 추가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원후이바오에 따르면 2008년 쓰촨 대지진 지역 출신 재일 중국유학생을 중심으로 성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도 지난해 댜오위다오 해상 충돌 사건 때 격했던 반일감정은 사라지고 “쓰촨 대지진의 은혜를 갚자”며 일본 돕기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하면서 일본과 관계가 냉랭해진 러시아는 11일 지진이 발생한 지 3시간도 채 안돼 일본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일본의 전력난 완화를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용 자원의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12일 “일본과는 영토 문제 등의 갈등이 있지만 이웃 나라인 만큼 적극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15만t의 LNG와 400만t의 석탄을 일본에 공급하는 한편 해저케이블을 통해 전력을 일본에 보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 수습을 위한 기술도 지원한다. 러시아 외교부는 국영은행에 일본을 돕기 위한 성금 계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중국 언론들은 교과서 문제와 독도 문제 등 일본과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이 일본을 애도하고 일본의 재기를 응원하고 있다며 한국의 인도주의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공군 C-130 수송기 3대를 이용해 119대원, 통역요원 등을 포함한 긴급구조대 102명을 일본에 급파했다
지난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강진으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뉴질랜드도 지난 13일 구조팀을 파견했다.
지원에 가장 발빠르게 나선 일본의 우방 미국은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호(9만7000t급)를 급파했다. 수색ㆍ구조ㆍ의료 전문가 144명과 12마리의 수색견으로 이뤄진 구조팀도 도쿄(東京) 소방당국 대원들과 함께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호의 헬리콥터 요원 17명이 낮은 수준의 방사능에 오염된 것으로 알려져, 미 해군 7함대는 군함과 항공기 등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연기 및 증기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이동시켰다.
구호활동에는 부유한 국가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들도 동참하고 있다. 특히 내전이 끝나지 않은 최빈국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시도 5만달러의 성금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구람 하이다 칸다하르시장은 “일본 같은 나라에 5만달러는 작은 금액이지만 칸다하르 시민들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 5년간 아프카니스탄에 5억달러를 지원했다. 스리랑카도 100만달러의 구호금을 지원하고 구조팀을 파견했다. 캄보디아도 10만달러의 구호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한희라 기자/hanira@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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